인도, 반도체 투자 러시...中 대체국가 꿈꾼다
(지디넷코리아=이나리 기자)세계적으로 자국 중심의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각 국가별 경쟁이 격화된 가운데 미국에 이어 유럽, 인도, 일본 등이 속속 전열을 갖춰 뛰어들고 있다. 이들 국가는 정부가 반도체 제조시설에 파격적인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제공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량을 늘린다는 목표다. 유럽은 현재 9%로 떨어진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려 시스템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다. 일본은 80년대까지 메모리 강국이었다가 1위를 한국에게 내어줬지만, 이번 투자를 계기로 종합반도체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이 위축된 가운데, 인도는 중국의 대체 국가로서 공백을 채운다는 전략이다. 이에 지디넷코리아는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한 각 국가별 현황과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올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연달아 인도에 신규 투자를 확정하면서 인도 모디 총리 주도로 진행된 인도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다만 한국, 미국, 대만이 첨단 미세공정 제조시설 투자에 중점을 두는 것과 달리 인도는 후공정과 R&D 센터 투자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는 인도가 반도체 제조시설에 필수적인 물, 전기 등 인프라 구축이 다른 국가보다 미흡한 탓에 기업들이 선뜻 투자에 나서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인도, 반도체 제조 강국 도전…소프트웨어 인재·저렴한 인건비 '강점'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반도체 산업이 과거와 달리 글로벌 아웃소싱이 힘들어지면서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인도 또한 반도체를 주력 산업으로 키우려고 한다”라며 “다만, 과거 반도체 사업 관련 이력이 없는 인도는 이들 국가와 상황이 다르다. 인도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제재받는 상황을 기회 삼고, 중국 대체 국가로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에 투자를 권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는 2021년 12월 반도체 제조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반도체 인도 프로그램(Semicon India Program)'과 '인도 반도체 미션(Indian Semiconductor Mission, ISM)' 조직을 만들었다.
1차 인센티브 제도 지원금은 총 7천600억 루피(약 12조원) 규모에 달하며,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에 중앙정부가 30~50%, 지방정부가 10~25%의 보조금을 각각 지원한다.
그 밖에 반도체 R&D, 제품 개발 및 교육에도 2.5%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어 올해 발표한 2차 인센티브 제도 지원금은 100억달러(13조원) 규모로 더 커졌으며, 반도체 제조설비에 중앙정부가 50%, 지방정부가 20% 추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2차 인센티브는 지난 5월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아울러 인도의 저렴한 인건비와 다수의 소프트웨어 인재는 글로벌 투자를 이끌기에 장점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에버러지셀러리서베이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 지역의 평균 연봉은 210만4520루피(약 3천270만원)이며, 석사급 IT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232만3888루피(약 3천611만원)로 조사된다. 이는 한국의 절반, 미국 실리콘밸리의 10분의 1 수준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지난 2월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인도는 전 세계 반도체 설계 인력의 20%를 차지한다.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인도는 현재 글로벌 체계에서 블록화되어가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생산시설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다”며 “그동안 인도는 소프트웨어 측면에 기술 우위가 있었으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반도체 시스템과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 인도, 美·日과 반도체 기술 협력…글로벌 기업 R&D센터 '투자 러시'
인도는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 힘 입어 올해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이끌어 냈다. 이는 인도 정부가 지난 6월과 7월 미국, 일본과 각각 첨단 기술 및 반도체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에 따른 일환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은 지난 6월 인도 구자르트 지역 반도체 후공정(테스트, 조립) 시설 건설에 1, 2단계에 걸쳐 총 27억5천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마이크론이 8억2천500만 달러를 투입하고, 인도 중앙정부가 총 비용의 50%, 지방정부가 20%를 각각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1단계 건설은 2023년에 시작해 2024년 말에 가동될 예정이며, 2단계 프로젝트는 2020년대 후반에 시작한다.
같은 달 미국 마이크로칩은 인도 벵갈루루, 첸나이, 하이데라바드 지역 3곳에 위치한 반도체 R&D 센터에 3억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또 지난 7월 미국 AMD는 벵갈루루에 향후 5년간 4억 달러를 투자해 칩 설계를 담당하는 디자인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세계 반도체 장비 1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얼리얼즈(AMAT)는 벵갈루루에 4년간 4억 달러(약 5200억원)를 투입해 반도체 장비 엔지니어링 센터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장비 3위 업체 미국 램리서치도 향후 10년간 엔지니어 6만명을 양성하는 반도체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반도체 후공정 장비 업체 디스코는 인도에 반도체 장비 지원 센터 건설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오시나가 노보루 디스크 부사장은 지난 8월 닛케이아시아와 인터뷰에서 “마이크론, 마이크로칩 등이 인도 투자를 결정함에 따라 신시장 개척을 위해 인도 현지에 마케팅 기지 역할을 할 센터 설립을 구상 중이다”고 말했다.
최근 늘어난 글로벌 기업의 투자로 인도의 반도체 시장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도전자반도체협회(IESA)에 따르면 인도의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280억 달러(약 36조원)에서 2026년 약 640억 달러(약 83조원)로 4년 만에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는 진전 없어…물·전기 인프라 투자가 급선무
인도의 반도체 시장은 거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탄탄한 성장세가 기대되지만, 기존 중국의 역할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인도 현지의 부족한 인프라는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에 어려움을 주면서 반도체 주요 공급 국가로 성장하기에 큰 걸림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형준 단장은 “10년 내에 인도가 반도체에 굉장히 큰 제조국이 되긴 된다는 것에 회의적”이라며 “반도체는 대규모 투자와 더불어 풍부한 공업용수,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산업이다. 인도에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력이 많아 장점이지만 물, 전력 등 인프라 구축이 안 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제조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런 부분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제조시설 투자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고 관측하면서 "신규 팹이 건설된다 해도 첨단 공정이 아니라 레거시 공정에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즉, 인도 정부가 인프라 문제를 급선무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병국 코트라(KOTRA) 무역관은 "그동안 인도가 반도체 제조보다는 R&D와 디자인을 중심으로 산업을 발전시켜온 이유도 인프라 여건이 여의찮았음을 보여준다"며 "인도는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에서 반도체 제조 투자에 파격적인 인센티브 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의 파격적인 정부 지원에 따른 긍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유재희 부회장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인도에 반도체 공장 신설과 시장 개방 등을 통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앞으로 인도의 반도체 부분 경쟁력은 상당히 발전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이나리 기자(narilee@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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