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별자의 나라][한겨레21×한국심리학회 공동기획]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있어야 하는 건강한 애도, 슬퍼하는 친구·직장 동료·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내성적인 아내는 평소에도 말이 없었다. 손뼉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아내는 도통 최범용(76·가명)씨와 말다툼하려 들지 않았다. 그 대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7년 전쯤 아내가 자살했을 때 최씨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동네 주민이 아내의 죽음을 두고 “돈이 없어서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 그는 몇 해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경비원 일을 몇 달 하다 잠시 쉬고 다시 하는 것을 반복했다. 아내의 사망 한 달 전쯤에는 이사한 집에 불이 나기도 했다. 전부 타진 않았지만 수리가 필요해 아파트 게스트하우스, 친한 이웃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내는 죽기 전날 저녁으로 돼지고기를 구워 자신과 아들에게 줬다. 지금까지도 “죽으려고 작정해서 그랬던 건지”는 알 수 없다. 대답할 수 있는 당사자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간절히 알고 싶은 ‘왜’
누구보다 ‘왜?’를 간절히 알고 싶은 사람은 남겨진 이들이다. 자살사별자는 고인이 어떻게 해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에 몰두한다. 유서는 없는지,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일기나 편지 등 다른 기록은 없는지, 최근 누군가에게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는지, 누구와 마지막으로 연락했는지, 적어도 그가 몇 시까지는 살아 있었을지를 추론한다. 그들에게 이 죽음은 경제적 문제, 육체·정신적 문제, 가정과 직장 문제, 대인관계 문제 등 몇 가지 특성을 꼽아 통계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삶의 맥락이 있었기에, 자살사별자들에게 고인의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이 알던 세상을 잃은 사건이다.
2019년 김설(31)씨는 어머니가 은퇴한 뒤 효도 차원에서 함께 떠난 스페인 여행에서 오빠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지난 4년간 “‘왜 죽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서 떼어내지지 않았다”고 했다. 오빠의 죽음에 과로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고인은 죽기 3개월 전부터 거의 쉬는 날 없이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일했다.
연이은 야근으로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블로그에는 “차라리 사고가 나서 쉬고 싶다”는 글을 남겼고, 결국 그는 회사 기숙사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김씨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닌지, 진짜 오빠를 죽게 한 건 무엇이었는지 계속해서 되물었다. 학창 시절 그가 겪은 일, 성격, 가치관 등 자신이 아는 오빠의 일생을 복기해보기도 했다. 죽은 이유에 근접할 수는 있어도, 짐작과 추론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괴로웠다.
정작 자살사별자의 주변인들은 쉽게 말을 얹었다. 빈소를 찾은 문상객이 “주식 했대?” “코인 했대?”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유족의 귀에 들렸다. 일상에서 자살 사별 사실을 밝혔을 때 “그런데 왜 죽었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했다. 스스로 수없이 물었지만, 김씨도 그 이유를 몰랐다. “우울증이라도 있었어?”와 같은 우회적 질문도 있었다. 단순히 본인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은 무례하게 느껴졌다. 김씨는 “결국엔 자살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자기 지레짐작대로 자살 이유를 판단하려는 듯한 유도 질문에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들어본 적 없는 “너 얼마나 힘들었니?”
주변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상처로 남았다. 대학생 박희진(23·가명)씨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전화했던 친구가 2022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에 사는 박씨가 직선거리로 300㎞ 이상 떨어진 지역의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 그의 가족은 “(사인이) 자살인데 뭐 하러 가느냐”며 웬만하면 그를 못 가게 하려 했다. 그의 슬픔을 함께해주기보다는 “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자살하면 불효”라는 말을 했다. 박씨는 “이런 말을 굳이 친구가 죽어서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떤 반응은 자살사별자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부추긴다. 황웃는돌(31·필명)씨는 2015년 아버지 사망 뒤 채무로 각종 송사에 시달렸다. 사실대로 주변에 밝혔을 때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헐, 어떡해?”였다. 통장이 압류됐다는 말에는 “어머, 어떡하니?”라고 말했다. “너 얼마나 힘들었니?”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도움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너랑 네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겠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찾아봐줄게”라는 말이 필요했던 거라고, 뒤늦게 황씨는 생각한다. 사람들의 말은 자신의 고통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황씨는 “결국 이 상황을 혼자 다 짊어져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자살 유족 자조모임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미고사)의 운영진 심소영(44)씨는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가까운 사람에게 밝혔을 때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는 게 힘들었다”. 자신이 어렵게 이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침묵이 이어졌다. 자신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분위기를 어둡게 한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만약 가족이 질병으로 사망했다면 ‘너 많이 힘들었겠다’고 말할 텐데, 자살은 왜 그렇게 반응해주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조모임을 하면서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이 한둘이 아님을 알게 됐다. 아버지 사망 뒤 진로를 바꿔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2년에 걸쳐 미고사 운영진 강명수씨와 함께 자살 유족 10명을 인터뷰했다.
배워본 적 없는 위로의 방법
그 결과물인 ‘자살 유가족의 애도 과정에서 나타나는 낙인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논문은 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한국가족복지학>(2023년 3월)에 게재됐다. 자살 유족이 경험하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국내 연구는 처음이다. 인터뷰이들은 편견과 더불어 자살 경험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주변에 수용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유대관계를 상실한 유족들은 대인관계를 회피했다. 심씨는 “건강한 애도는 유족이 고인과 지속적인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은 사별자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적절한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사별자의 주변인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슬퍼하는 친구, 직장 동료, 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정도민(35·가명)씨는 살아오면서 한때 가깝게 지냈던 친구 세 명이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냈다. 그가 20대 중반에 알고 지냈던 한 친구는 가족의 자살 이후 음주운전을 하거나,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등 “엄청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정씨는 “나는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우의 수를 다 따져봐도 알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없었던 일처럼 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자주 연락하면서 항상 상대를 생각한다는 걸 티 내야 하는지 늘 망설여졌다.
이연수(37·가명)씨는 주변의 자살사별자들을 지켜보다 상실과 사별에 대한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 슬픔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고, 그 옆에 내가 있는데 이 죽음을 어떻게 다룰지 모르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가 지켜본 자살사별자들이 느끼는 분노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인을 지키지 못한 자기 자신과 주변인, 사회구조적 문제였다. 또 다른 분노의 대상은 자살사별자에게 “얄팍하고 어설픈 위로를 하거나, 더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주변 사람이었다. 이씨는 “자살이라는 죽음이 어떤 건지, 그때 유족은 어떤 상태가 되는지 사회적으로 학습한다면 이들이 상처받는 일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단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일은 도움이 됐다. 2023년 5월 15년 지기를 자살로 잃은 고희인(32·가명)씨도 다른 친구 4명과 ‘친구 이야기를 피하지 말고 떠오르면 계속 이야기하자’고 서로 약속했다. 친구들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같은 지역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인생의 오랜 순간에 늘 그 친구가 있었다. 고씨는 “장례식장에서 눈물이 나서 친구 이야기를 피하려 했지만 그 친구가 기억 속에 너무 많았다. 친구 이야기를 안 하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심장이 콱 조이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울고 웃으니 엉킨 감정이 조금씩 풀렸다. 남은 친구끼리는 서로 더 많이 챙기게 됐다. 이전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연락하거나,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며 본인 이야기 위주로 했다. 최근엔 “요즘 뭐 해?” “넌 요즘 어때?”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뜬금없이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 챙기는 빈도가 늘었다.
오빠가 죽고 난 뒤 김설씨도 한 친구에게 말했다. “그냥 울 곳이 필요해. 내가 울고 있으면 내 옆에서 우는 걸 바라만 봐줘도 돼. 당황스럽고 위로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뭘 안 해줘도 돼.” 친구는 오열하는 김씨를 토닥여주기만 했다. 어설픈 위로를 받는 것보다 좋았다. 심소영씨도 너무 힘들 땐 주변 사람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오늘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할 거야. 그러면 아무 얘기 하지 않고 들어만 줘도 돼. 마지막에 ‘그래, 너 많이 힘들었겠다’ 이 얘기만 해줘.” 단지 가까운 사람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옅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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