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 맞는 옷 찰떡같이 추천... 이제는 옷 쇼핑도 AI 시대"
온라인에서 검은색 긴팔 티셔츠를 구매하고자 하는 A씨. 목 부분은 브이(V)자였으면 좋겠는데 너무 깊게 파인 옷은 거부감이 든다. 허리 부분은 배에 딱 달라붙지 않게 여유가 있는 게 낫겠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포털 사이트에 '검은색 브이넥 긴팔 티셔츠'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85만여 개. 가격대를 최대 5만 원으로 설정해도 54만 개나 됐다. 10페이지까지 둘러보다가 썩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지 못한 A씨는 '그냥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사자' 생각하며 웹브라우저를 껐다.
이는 온라인에서 옷을 사려는 이들이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다.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너무 많은 옷 중에 내가 딱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충 머리로는 그려지는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설사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도 온라인 검색창이 이를 담아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곧, 유니콘] 홍지원 예스플리즈 대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예스플리즈'(YesPlz)의 홍지원 대표는 사람마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이 다 다른데도 온라인에선 '기계가 이해하는 방식으로만' 검색을 하고 추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문제라고 봤다. '너무 깊게 파이지 않은 브이넥의 검은색 티셔츠'를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점원에게 설명하고 찾을 수 있지만 이를 그대로 검색창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불편한데도 참아왔던 거예요. 인공지능(AI)이 바꿀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정확하게 추천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거죠."
예스플리즈는 AI를 기반으로 이용자가 원하는 옷을 검색하고 추천받을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든다. 홍 대표가 마이크로소프트(MS) 엔지니어 출신인 조석재 최고기술책임자(CTO)와 2020년 창업했다. 예스플리즈의 고객은 패션업체들로, 예스플리즈의 솔루션을 사다 자사 쇼핑몰에 결합한다.
지난해 말 챗GPT가 불러온 생성 AI 열풍으로 예스플리즈도 요즘 전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AI를 연구하고 적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다는 패션 업체들이 예스플리즈를 찾고 있다고 한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 카페에서 홍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업 실패
두 번째 창업에 거름이 된 첫 창업 실패 경험
사실 예스플리즈는 홍 대표의 두 번째 회사다. 막연히 '언젠가 창업을 해보리라' 꿈꿨던 홍 대표는 삼성전자 소속 주재원으로 3년 동안 실리콘밸리에 머물며 결심을 굳혔다고 회상했다. "주재원으로서 제가 맡은 일이 스마트TV 협력 업체들을 찾는 거였어요.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만날 일이 많았죠. 자기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내고 투자를 받는 이들을 보다 보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동화됐다고 해야 할까요? '나도 빨리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생태계에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2017년 고급 음식 양념을 추천해 주는 스타트업 50㎖를 창업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어요. 제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는 '언젠가 시장이 알아주겠지' 했던 거죠."
실패했지만 끝은 아니었다. 첫 번째 창업에서 고배를 마셨어도 두 번, 세 번째 창업에서 성공한 실리콘밸리의 많은 창업자들처럼 그 역시 다음 창업 고민에 나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연구했다. 사용자 인터뷰 등을 통해 그 스스로 온라인 옷 쇼핑을 할 때 느꼈던 문제를 다른 사람들도 많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옷은 모든 사람이 입기에 양념보다는 시장 규모도 컸다. 예스플리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번엔 남편인 조 CTO도 함께였다. "스스로에게 딱 3개월을 줬어요. 안 되면 그만두고 취직을 하겠다고요. 그런데 회사를 세우자마자 바로 반응이 왔죠. W컨셉과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한섬을 고객사로 유치했습니다."
추천
필요하지만, 어려워서 더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
홍 대표의 첫 번째 회사 50㎖와 예스플리즈 사이엔 '추천'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삼성전자에서 일할 때부터 추천에 관심이 많았는데 창업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제 스스로가 추천 서비스를 필요로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엄청 부지런하진 않은데 또 비효율적인 건 싫어하거든요. 각 개인에게 딱 맞는 것을 추천해 주는 게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해결하고 싶었죠."
사람들이 옷을 살 때 쓴 검색어 3,000여 개를 뽑아 분석하고 소비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랬더니 발견한 건 사람마다 원하는 게 너무나 다른데 이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어깨 부분은 드러나되(오프숄더) 배 부분은 달라붙지 않고 여유 있는 옷을 검색창에 검색해서 찾기는 어렵죠. 목 부분 깃이 접혀 있는 옷을 두고도 폴라티, 피케티, 카라티 등 사람마다 부르는 용어가 다르고요."
예스플리즈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그림'에서 찾았다. 말 대신 그림으로 표현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네킹 그림을 보고 원하는 어깨 모양, 패턴(무늬), 색상 등을 차례로 선택하면 AI가 그와 최대한 일치하는 옷을 뽑아 보여준다. 예스플리즈의 대표 제품인 '마네킹 필터'다. 구매 이력이나 '좋아요'를 누른 옷 등을 분석해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옷을 추천해주는 유사 추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마네킹 필터를 적용한 패션 플랫폼들은 사용자가 장바구니에 담는 옷 개수가 평균 1.9개였던 게 3.6개로 늘었어요. 유사 추천을 도입한 업체들의 경우엔 매출이 평균 15~20% 증가했고요."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
불가능했던 쇼핑 경험을 가능케 할 기술
홍 대표는 AI 붐이 일고 있는 요즘을 "물 들어올 때"라고 표현했다. 예스플리즈를 만든 2020년만 해도 AI가 굳이 왜 필요한지 관심조차 없는 패션 업체들이 많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확실히 달라졌다고 한다. "2020년 처음 서비스를 출시했을 때 약 70곳에 제안 메일을 보냈는데 대부분 답장도 주지 않았어요. 읽기는 한 건지, 메일 주소가 틀린 건 아닌지 생각할 정도였죠. 그런데 요즘엔 먼저 알고 연락 오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최근 몇 달 동안 만난 업체만 300곳이 넘어요.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셈이죠." 예스플리즈와 협업을 논의 중인 의류업체 중엔 이름만 대면 아는 대형 업체들도 적지 않다고 그는 귀띔했다.
예스플리즈는 최근 AI 검색을 고도화하는 데 특히 힘을 쏟고 있다. 자연어를 더 잘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AI는 더 많은 일을 더 저렴하게 가능케 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가령 '위저드 스케이팅(스케이팅의 일종)에 어울리는 옷을 찾아줘'라고 대화하듯 말해도 적합한 옷을 찾아주는 거죠. 사실 위저드 스케이팅은 사람 스타일리스트의 경우 모를 가능성이 크잖아요. 사람이 모든 하위문화를 알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AI 스타일리스트는 가능해요. 정말로 개인화된 추천을 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은 패션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지만 패션 쪽에서 입지를 구축하면 다른 품목으로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아직은 정말 작은 회사지만 장기적으로 AI 기반 추천 검색 최고 기업이 되는 게 목표예요. 지금 속도대로라면 못 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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