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윤석열의 일본관과 친일 윤똑똑이들
[미디어오늘 손석춘 철학자·「우주철학서설」 저자]
다시 국치일을 맞는다. 참담한 과거를 기억하는 뜻은 윤똑똑이들이 주장하듯 무슨 콤플렉스 따위가 아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무리가 하도 많은지라 경계하기 위함이다.
국치를 당한 1910년 8월29일, 윤똑똑이 대표는 당시 민중의 무지몽매를 꾸짖던 윤치호다. 그는 10대 시절 일본에 가서 근대화된 모습에 주눅 들었다. 서른 살을 앞두고는 “마음대로 내 고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할 것이다. 오, 축복받은 일본이여! 동방의 낙원이여!”(1893년 11월1일)라고 일기에 썼다. 조선을 멸시했던 그는 정작 민중들이 독립만세운동에 나서자 총독부 기관지에 '칼럼'을 썼다. “강자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 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만약 약자가 강자에 대해서 무턱대고 대든다면 강자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약자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된단다. “그저 덮어 놓고 불온한 언동을 부리는 것”은 이로운 일이 아니라고 훈계했다(1919년 3월7일). 그 뒤에도 심지어 독립운동에 자금을 댄 사람들까지 비난하며 일제에 꼬리쳤고 그 대가로 내내 호의호식했다.
국치일에 새삼 윤똑똑이를 소환하는 까닭은 윤석열의 광복절 경축사에 있다. 그는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케케묵은 빨간 색깔을 칠하며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비난을 늘어놓더니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추어올렸다. 강자와 약자론을 펴며 독립운동을 혐오하던 윤치호가 떠오르는 것은 나뿐일까. 일본 오염수 방출이 위험할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우리 민중들의 우려는 '비과학적'이라 무시하고 일본의 주장은 정직하다고 믿는 모습과 윤치호는 또 어떤가.
윤석열의 일본관도 소년 시절에 형성된 듯하다. 일본 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국비유학생이던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를 회고하며 “선진국답게 아름다웠다” 했고 “일본인들이 무슨 일이든 정직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일본인들은 과연 무슨 일이든 정직할까. 마침 100주기를 맞는 간토대학살을 짚어보자. 1923년 9월1일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내무대신은 경찰을 통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분노를 풀어줄 깜냥이었다.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했다. 칼, 죽창, 철봉을 휘둘렀다.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최소 6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서로 피한 조선인들까지 쫓아 들어갔다. 야만적으로 학살했다. 경찰은 방조했다. 일본 정부는 학살을 모두 은폐했다. 책임을 자경단으로 돌렸다. 일부 자경단원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물론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일본 정부나 민간인이던 자경단원 그 누구도 정직하지 않았다. 아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까닭도 기실 일본이 정직하지 않아서였다. 조선을 돕겠다고 약속하곤 미국과 쏙닥쏙닥 밀약을 맺지 않았던가.
오해 없도록 다시 명토박아둔다. 나는 21세기 일본 민중들에게 전혀 유감이 없다. 내 소설이 일어로 번역되어 도쿄와 오사카에서 출판기념 강연을 했을 때 뒤풀이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겸손했다. 아사히 논설위원과는 노래방까지 가서 어깨 잡고 노래 불렀다. 내 강의에 들어오는 일본 유학생들의 학구적 자세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일본 민중과 지배세력인 자민당은 많이 다르다. 보라. 윤석열은 광복절에도 일본과 “가치 공유”니 “공동이익”이니 부르댔지만 일본 총리 기시다는 태평양전쟁 일급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일본이 정직하다는 소년 윤석열의 무지는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의 윤똑똑이 언행은 용서할 수 없다. 국치일과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여러 행사가 열린다. 8월29일에서 9월1일까지 윤석열과 21세기 윤똑똑이들에게 역사적 성찰을 촉구한다. 미국과 일본을 맹종만 하면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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