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반겨줄 보석같은 영화" 봉준호 감독 찬사 쏟아낸 '잠'(종합)
조연경 기자 2023. 8. 28. 11:24
알찬 영화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재생산하게 만든다. 전체를 봐도, 하나 하나 디테일하게 꼬집어 봐도 칭찬한 구색만 가득한 작품이다.
지난 26일 서울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는 영화 '잠(유재선 감독)' 스페셜 GV '가장 유니크한 대화 with 봉준호 감독'이 진행됐다. 이 날 행사에는 유재선 감독과 배우 이선균,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 모더레이터로 직접 나서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영화 연출부 출신의 감독 데뷔를 축하하고 흡족해 하며 영화 안팎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배의 마음을 여러 각도로 내비치고 있는 상황. 이 날은 영화의 러닝 타임만큼 찬사의 평가를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지난 5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되며 주목도를 높인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인해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봉준호 감독 작품 '옥자' 연출부 출신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정유미 이선균이 부부 호흡을 맞췄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유재선 감독과 이선균은 이 날 객석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GV에 응해 더 따끈따끈하고,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할만한 대화들을 오가게 만들었다.
최초 시나리오와 편집본 모니터링 후 큰 스크린에서는 자신도 처음 관람한다고 밝힌 봉준호 감독은 "94분을 간 엄청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긴장감이 남다르더라. 내 옆 관객 분들도 영화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이라 좋았다. 아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봐도 칭찬하셨을 것 같다. 그 분의 목표가 극장이 500석이 되든, 700석이 되든 모든 관객들이 요즘으로 따지면 휴대폰을 전혀 보지 않고,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작품으로만 관객들을 멱살 잡고 끌고 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잠'은 관객들을 그렇게 만든 작품이다"라고 시작부터 만족감을 표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봉준호 감독은 먼저 정유미 이선균의 따로 또 같이 케미를 비롯해 영화를 빛낸 배우들 모두에게 주목했다.
신인 시절 찍은 '알포인트' 이후 주인공으로 호러 장르를 선택한 건 처음이라는 이선균은 봉준호 감독의 '작품 참여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감독님이 추천 해주셨잖아요"라며 호탕하게 웃더니 "'잠'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유재선 감독님에 대해 '아끼는 후배가 있는데 재능을 갖고 있다' 는 말씀을 주셨다. 당연히 기대가 됐다. 근데 기대감이 크면 실망하는 경우들도 있지 않나.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많은데, '잠'은 시나리오부터 군더더기 없이 정말 좋았고, 너무 재미있게 봤다. 무엇보다 유 감독님이 봉 감독님을 너무 닮고 싶어 해 현장에서도 그런 점들이 보였다.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정유미 이선균의 부부 호흡에 대해 "케미스트리가 대단했던 것 같다. 공포 포인트를 지우면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로코(로맨틱코미디)에 근접할 정도로 알콩달콩함이 돋보였다. 그러다가 순식간데 공포로 전환되는 템포와 그 사이 기이한 유머들도 많더라. 그것이 기묘한 현실감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며 "신인 감독으로서 첫 작품을 엄청난 배우들과 같이 한다는 건 대단한 복이다. 유재선 감독은 얼마나 행복했을까"라고 함께 흐뭇해 했다.
유재선 감독은 "처음으로 배우들과 일종의 교류가 간접적으로나마 있었다 생각한 부분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드니 미팅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굉장히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말 그대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두 배우는 한국 영화계에서 이미 연기력으로 너무나 유명한, 전설적인 배우들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떤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이었다. 캐스팅을 돌린다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 전까지는 솔직히 이 프로젝트가 직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느껴지지 않았다. 비현실적 관문들이라 '준비하다 언젠가는 엎어질테고, 그럼 다른 감독님 연출팀으로 프로젝트에 합류해야지'라는 방어기재를 나 스스로는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이어 "근데 배우 분들의 관심을 통해 '아, 이건 현실적인 프로젝트구나. 만들 수 있겠구나. 이전까지 연출팀의 모자를 썼다면 이제 감독의 모자를 한 번 써봐야 하는구나'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며 "연기는 워낙 잘해주셔서 내가 쓴 대사를 연기하고 동선에 따라 움직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연기력과 감정에 압도돼 '컷'을 외쳐야 하는 순간이 딜레이 된 적도 있었다"고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봉준호 감독 역시 "명배우들의 명연기를 근거리에서, 같은 공간에서 제일 처음 목격하는 사람이 감독이다. 그런 것이 모니터를 통해 보일 땐 정말 '축복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동의했다.
덧붙여 유재선 감독은 "두 배우 분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에 그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내 자신, 내 앞가림이나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고, 물론 배우 분들의 연기를 잘 담아내고 이끌어내는 것도 감독으로서 앞에 놓인 숙제였지만, 다른 연출적인 부분을 보완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연기는 이미 다 됐다' 신뢰했다"며 "촬영 전 몇 차례 리딩을 진행할 때도 배우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혹시 이 부분 이해 안되거나 어렵진 않을까요?' 여쭤봐도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잖아요. 그대로 하면 되지'라면서 이미 캐릭터에 동화 된 모습을 보여 주셨다. 나에게도 큰 자신감이 됐다"고 인사했다.
현 슈퍼스타 이선균은 극중 무명 단역배우 설정으로 흥미로운 열연을 펼친다. 봉준호 감독은 "이는 클라이막스와 직결되는 아주 강력한 영화적 장치가 되고, 상황에 어울리는 텐션을 불러 일으킨다"며 이선균에게 "실제 스타로서 작품을 통해서는 설움도 많고 고민도 많은 단역 배우 이선균으로 관객들을 설득해야 했다"는 말을 건넸다. 이에 이선균은 "작품에서 배우 역할을 해 본 것은 처음인데, 실제 나도 단역부터 시작해 어렵거나 불편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공감이 갔다. TV 속 내 연기를 보면서 유미 씨 뒤에 숨고 자학하는 모습은 실제 과거의 내 리액션이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봉준호 감독은 '잠'을 '연기 구멍이 없는 영화'라고도 평가하며 그야말로 '신들린' 정유미 뿐만 아니라 부부의 아래층에 살고 있는 이웃 주민 김국희, 그리고 무당으로 등장하는 김금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김금순을 꼬집으며 "한 시퀀스를 완벽하게 담당했다. 등장하는 순간 공간이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고, 해당 장면에서 캐릭터가 선사한 카리스마가 후반부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설득력을 갖게 했다"고 극찬했다.
유재선 감독은 "연출팀의 인물 담당이 오디션 테이프를 하나 보여줬다. 우리가 오디션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다른 연출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모아왔던 영상을 보여준 것이다. 근데 그 영상에서 조차 우리 모두 그 분의 아우라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영험함을 눈빛에서 느꼈다. '당장 만나고 싶다'고 말해 첫 미팅을 가졌는데, 그 날도 영화 속 비주얼과 비슷한 모습으로 오셔서 바로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봉준호 감독은 강아지의 열연에도 눈을 빛내며 "극중 후추와 앤드류는 같은 강아지냐"고 물었다. 또 "내 데뷔작이 '프란다스 의 개'다. 그 작품에 여러 (개)분들이 나왔다. '잠'은 특히 타이트한 예산과 정해진 일정 안에서 알차게 가는 영화다, 보면서 '강아지 배우가 현장에서 엄청 연기를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덧붙였다.
유재선 감독은 "맞다. 프로 강아지 뽀식이 포메라니안이다. 사실 데뷔 영화를 할 때 금기시 되는 것이 아기와 강아지 캐스팅이다. 우리 영화는 두 철칙을 모두 어겼다. 근데 아기와 강아지 배우 모두 어떤 트러블도 주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연기를 펼쳐줬다. 특히 뽀식이 배우님 같은 경우 후추를 연기할 땐 최대 두 테이크 만에 'OK' 사인이 날 정도로 캐릭터와 동화 된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앤드류 땐 우리끼리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셨나보다' 할 정도로 10 테이트, 20 테이크가 갈 때까지 말을 안들었다. 내 소통과 연출 부족 아니었나 싶다"고 토로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전반의 설계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3장에서 정유미 씨의 PPT 신은 공포 영화 사상 유례가 없다. 무섭고 묘하면서 웃기고 기괴하고 섬뜩하다. 그런 톤은 오프닝부터 명확하게 세팅하고 구축돼 있다"고 말한 봉준호 감독은 "실제 오프닝을 보면 피식 피식 웃긴데 바로 공포스러워지는 부분이 몇 번 교차된다. 아주 간단한 리듬도 재미있더라. 긴장이 풀릴 것처럼 하더니 재앙의 텐션을 보여준다. 아주 정교하게 톤앤매너가 구축돼 있고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여기에 아파트 한 세트로 위 아래층을 모두 촬영한 점에 대해서도 "얼마나 스마트하고 효율적이 시나리오냐"고 칭찬했다.
이선균은 "나도 PPT 신이 재미있었다. 현수를 배우로 설정한 것처럼, 수진은 초반부터 PPT를 만드는 신을 여러 번 보여준다. 캐릭터의 연결성과 함께 빌드업의 일환으로 봤다. PPT 신에서 산발로 나오는데 얼굴은 또 귀엽지 않나. 촬영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며 "3장 같은 경우는 유미 씨와 거의 연극처럼 찍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통해 조그마한 호흡들이 어느 정도 훈련이 돼 있었던 것 같다. 공간은 하나인데 카메라 앵글 등 변화의 포인트는 충분하다. 재미있게 봐 주시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이와 함께 봉준호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여러가지 되게 많은 기분이 들더라"는 감상평을 전하며 "영화를 마무리하는 방법도 단호하고 가차 없어 보였는데, 약 10초 정도 후에 음악이 흘러 나오게 한 건 관객들로 하여금 여운을 만끽하게 하기 위한 이유였냐"는 질문을 던졌다.
유재선 감독은 "기술적이고 연출적인 의도였다. 엔딩을 즐길 수 있는 텀이 필요할 것 같았다"며 "진행 과정에서 제작진들과 엔딩에 대해 열렬히 토론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원래 계획대로 한 것이 좋았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감독으로서 가졌던 해석과 생각은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관객의 해석도 틀리지 않을 것이고, 다양하게 이야기 됐으면 싶다"며 "사실 '보험 삼아 에필로그를 찍어두자' 해서 실제로 찍었는데,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정말 운 좋게도 블루레이나 DVD가 나오더라도 에필로그 장면은 넣지 말고 모든 자료를 폐기해 주셨으면 좋겠다. 해석을 닫아 놓게 될 것 같다"고 단호한 심경을 내비쳤다.
봉준호 감독은 유재선 감독의 답변을 흡족해 하며 "이야, 진짜 단호하고 멋지다. 역시 감독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이선균은 "오늘 영화를 두 번째 보는데 나와 정유미 씨가 여러 번 찍은 홍상수 감독님 작품에 히치콕의 장르를 입힌 것 같다는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촬영할 때도 그랬지만 유재선 감독은 '다음도 기대되는 감독'이 분명하다. 어떤 영화를 찍을지 궁금하다"며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유재선 감독의 차기작은 미스터리 범죄물 혹은 로맨틱코미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봉준호 감독은 "최근 한국 영화 산업과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도 많고, 영화보다 OTT 시리즈가 주목 받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일지는 몰라도 스토리와 배우들의 힘으로 95분을 숨 막히게 끌고 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영화적 힘 자체가 빛나는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너무 반갑다"며 "그리고 그것이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 또한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한다. 신인 감독이 데뷔할 땐 여러 허들과 많은 어려움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보석 같은 영화가 나왔다'는 느낌도 받았다. 재미있고 유니크한 영화, 영화적인 영화의 출현 자체로 반갑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봉 감독은 "우리가 예를 들어 '아바타' 같은 큰 영화만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잠'이 증명해 주는 것 같다. 나 자신도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를 보면서 스크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진정 우리가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영화는 뭘까'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면서 모든 면에서 새롭기도 하다"며 "'분명 관객 분들도 이 영화를 반겨줄 것이다, 반겨 줬으면 좋겠다'는 믿음과 바람이 있다"며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 옆에서 관람한 관객 분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바로 반응을 하시더라. 그 관객 반응이 전체 관객 분들의 반응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자신하고 단언했다.
'잠'은 칸영화제 뿐만 아니라 최근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판타스틱페스트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어 개봉 후 관객 반응을 기대케 한다. 봉준호 감독 역시 "칸에서 출발한 장르 영화의 행로가 시체스, 토론토까지 해외로도 의미있는 궤적의 정통 코스를 밟아가고 있다. 이미 해외 개봉을 위한 주요 배급사들도 정해진 것으로 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고, 전세계 관객들을 만나게 될 작품이다"라고 응원했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JTBC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잿더미' 하와이 또 산불…"지체 말고 피신을" 한때 대피령
- 대통령실, 구내식당에 우리 수산물 제공…"국민 안심소비 취지"
- 미국 플로리다서 대낮에 총격…흑인 3명 숨져
- 시속 104km, 가장 느린 '커브'로 삼진…류현진 시즌 3승
- '동료가 먼저' 주장 손흥민의 헌신…토트넘 리그 선두로
- [단독] 명태균 "국가산단 필요하다고 하라…사모한테 부탁하기 위한 것" | JTBC 뉴스
- 투표함에 잇단 방화 '충격'…미 대선 앞두고 벌어지는 일 | JTBC 뉴스
- 기아의 완벽한 '결말'…우승에 취한 밤, 감독도 '삐끼삐끼' | JTBC 뉴스
- "마음 아파도 매년 올 거예요"…참사 현장 찾은 추모객들 | JTBC 뉴스
-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금 20돈 발견한 경비원이 한 행동 | JTBC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