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가득 군용모포가 추상 설치작품으로…최전방 분단 현장서 꽃핀 예술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8. 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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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현장서 함께 피어난 야생식물과 현대예술
DMZ전시:체크포인트 8월 31일 개막
파주 캠프그리브스·도라산전망대 이어
연천군 간이역 등으로 이어가 전시 진행
캠프그리브스 체육관에 펼쳐진 ‘DMZ전시:체크포인트’전경 <DMZ오픈페스티벌>
70년 전 미군2사단 506연대가 주둔한 캠프 그리브스.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있던 이 부대는 미군 철수 후 이제 유스호스텔로 바뀌었다.

옛 미군이 사용하던 체육관에 들어서니 높은 천장에 걸린 수십장 그림들이 모인 대형 설치작품부터 눈에 들어온다. 임민욱 작가가 군용 모포 36장에 그려 완성한 ‘커레히-홀로 서서’다. 체로키어로 ‘홀로 서다’는 뜻의 이 단어는 506연대가 있던, 조지아주 산 이름에서 따왔다.

이 대형 작품 뒤를 보면 낡은 담요임이 분명해진다. 군부대 소속이나 병사 이름은 물론 땀자국 얼룩 등 군 생활의 흔적을 품고 있다. 작가는 “혹독한 훈련 속에서도 잠을 자는 모포만은 안전과 평화의 영역, 통제된 DMZ를 벗어난 영토를 상징한다”며 “획일화된 통제 속에서도 정복될 수 없는 꿈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DMZ전시:체크포인트’전시에서 캠프그리브스 막사 인근 조경진·조혜령의 ‘식물 평행세계’작품. <DMZ오픈페스티벌>
분단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에서 야생 동식물과 어우러진 현대예술가 27명 작품을 감상하는 ‘DMZ전시:체크포인트’가 올가을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김선정 아트선재 예술감독이 2012년 시작한 현대예술 기획전 ‘리얼 디엠지(DMZ) 프로젝트’가 올해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기획한 ‘DMZ오픈 페스티벌’에 포함돼 경기도 파주시와 연천군에서 열린다.

파주는 북한 개성공단이 내려다보이는 도라전망대와 캠프그리브스,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8월 31일부터 9월 23일까지 펼쳐지고, 이어서 연천군에서 10월 6일부터 11월 5일까지 민통선 내부 안보전시관이 재탄생한 연강갤러리와 경원선 신망리역·대광리역·신탄리역에서 열린다.

김선정 감독은 “DMZ의 장소성과 역사, 분단의 의미를 예술적 시각으로 환기하는 프로젝트”라며 “정전 70주년을 맞는 올해 젊은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직접적인 분단 경험이 없다 보니 자연과 추상적 접근법이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도라전망대 앞에 정소영의 조각 ‘환상통’을 선보인 ‘DMZ전시:체크포인트’. <DMZ오픈페스티벌>
도라전망대 1층에 이끼바위쿠르르 벽화를 선보인 ‘DMZ전시:체크포인트’ 전경. <DMZ오픈페스티벌>
도라전망대 입구에는 절단된 돌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주변 풍경을 비추는 스테인레스판이 합쳐진 정소영의 조각 ‘환상통’이 숨어있듯 전시됐다.

오랫동안 접경지역을 촬영해온 일본 작가 토코모 요네다의 사진과 DMZ 식물을 채집해 탁본하듯 만든 이끼바위쿠르르 벽화도 주변에 어우러진다.

이우성 회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2021)는 한국전 당시 154고지 전투가 치열했던 북한 접경지역 김포 야산 애기봉을 붉은 빛 천에 서정적으로 표현됐다.

캠프그리브스 체육관에 펼쳐진 ‘DMZ전시:체크포인트’에서 서용선 회화와 이재석 회화가 조응한 모습. <DMZ오픈페스티벌>
장소성이 극대화된 캠프그리브스가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거대한 체육관에는 임민욱 외에도 6·25를 겪은 세대 서용선이 거친 붓질로 완성한 대형 회화, 군용 텐트를 통해서 외부와 내부 경계의 문제를 탐구한 이재석의 회화와 개성공단 폐쇄당시 사진으로 해체를 표현한 함경아의 설치작업이 조화롭다.
캠프그리브스 막사에 펼쳐진 ‘DMZ전시:체크포인트’ 장면. <DMZ오픈페스티벌>
낡은 미군 막사 공간으로 이동하면 더욱 흥미로와진다. 동두천을 집중 탐구해온 최원준은 기존 막사에 꾸며진 역사관 사진을 일부 바꿔치기 해서 ‘미군 기지촌 클럽에 대한 작은 역사’를 선보였다. 이 지역 식물들과 표본을 모아서 남한말과 북한말로 병치해 격차를 극대화한 조경진·조혜령의 ‘식물 평행세계’도 분단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캠프그리브스 막사 화장실에 혜안폴권카잔더 작품을 설치한 ‘DMZ전시:체크포인트’ 장면. <DMZ오픈페스티벌>
막사 화장실 안에는 혜안폴권카잔더 팀이 양극화된 정치 상황처럼 빨강과 파랑, 남과 북, 물과 불, 가득찬 것과 텅 빈 것 등 이분법 개념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기물들을 모아서 재해석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는 사방이 탁 트인 언덕에서 김홍석의 싸움하는 둣한 텐트천 조각 ‘불완전한 질서 개발-회색 만남’이 맞이한다.

새벽부터 북한 정찰인공위성 발사가 실패했다는 뉴스가 터졌던 지난 24일 방문때 도라산전망대 입장 버스 검문에만 30여분 소요됐다. 전시를 관람하려면 넉넉히 일주일 이상 앞서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방문땐 신분증을 챙겨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DMZ오픈 페스티벌 공식 누리집(dmzopen.kr)에서 참가신청하면 된다. 버스 전시투어도 준비됐다.

분단의 역사 속에서 예술적 체험을 극대화할 기회다. 특별한 장소성의 매력 때문인지 오는 9월 프리즈 서울 기간 방한하는 해외 예술 관계자들도 이 전시에 대한 관람 문의가 잇따른다고 한다.

캠프그리브스 막사 기념관을 최원준 작가가 재배치한 ‘DMZ전시:체크포인트’ 장면. <DMZ오픈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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