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퇴직연금 운용, 우선 둘로 나눠라

2023. 8. 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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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이에게 자신의 돈을 세 부분으로 나누게 하되 3분의 1은 토지에, 3분의 1은 사업에 투자케 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예비로 남겨두게 하라.”

약 2000년이나 된 ‘탈무드’의 문구다. 자산을 나눠 투자하는 자산배분이 결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연금가입자에게는 자산배분이라는 개념이 쉽지 않은 듯하다.

최근 발표된 ‘2022년 퇴직연금 적립 및 운용 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정기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은 335조9000억원인데 원리금 보장상품은 298조원으로, 88.7%를 차지했다. 반면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은 37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포인트 감소한 11.3%에 불과했다. 전 세계적인 금리인상 등에 따라 저축은행 정기예금과 같은 고금리 저축상품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연금 자산운용을 1년 단위의 시장 상황에 따라 대응하다가는 자칫 ‘엇박자 운용’이 되기 쉽다. 실제로 2022년 말 저축은행 등의 정기예금 금리가 연 6%대를 보이자 퇴직연금 자금이 대거 몰렸다. 하지만 이때 국내 코스피나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투자했다면 지난 25일 현재 각각 12%, 14%의 수익률을 달성했을 것이다.

장기적인 자산배분이 왜 중요한가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검증된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74~1983년 진행된 미 91개 대형 연금플랜에 대한 연구결과(G.Brinson·R.Hood·G.Beebower, 1986)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요소 중 투자 성과의 93.6%가 ‘자산배분’ 결정에 의해 설명됐다는 점이다. ‘증권 선택’이나 ‘시장 예측’은 각각 4.2%, 1.7%에 불과했다.

이를 연금 운용에 적용한다면 특정 금융상품에 대한 선택이나 시장 예측에 따른 상품 갈아타기는 장기적인 운용 성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올리기 위한 열쇠는 어떻게 원리금보장형 상품과 실적배당형 상품 등으로 자산을 나누냐에 전적으로 달렸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최적의 자산배분을 결정하는 간단한 공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자산배분이란 한 번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2~3년마다 정기적으로 또는 삶의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점검하고 개선해가는 ‘과정’이다. 은퇴 후 생활자금 마련을 위한 자산배분을 보자. 은퇴시점에 필요한 생활자금에서 현재 준비된 자산을 빼면 앞으로 모아야 하는 자산 규모를 계산할 수 있다. 품위 있는 은퇴생활에 필요한 부족 자산을 모으기 위해서 저축상품과 투자상품에 대한 적절한 비중을 결정해야 한다. 현재 자산 상태와 운용 규모,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은퇴시점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목표수익률을 산출할 수 있다. 이후 이 목표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각 상품의 장기적인 기대수익률 등에 따라 각각의 비중을 정한다. 이런 방식은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단계이기에 가능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방식은 없지만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저축상품과 투자상품의 비중을 정한 포트폴리오를 우선 두 개로 나눠 운용하는 것이다. ‘핵심-위성(Core-Satellite) 전략’이나 ‘바벨 전략(Barbell Maturity)’ ‘부채연계투자(LDI)’ 등이 모두 그렇다.

안정형 포트폴리오는 자신의 투자 경험이나 손실에 대한 민감도 등을 고려해 안정적으로 구성한다. 한 번도 투자해본 경험이 없다면 안정형 포트폴리오에는 100% 은행 정기예금만 해도 된다. 어느 정도 투자 경험이 있다면 정기예금 60%, 전 세계 자산에 고르게 분산된 타깃데이트펀드(TDF) 40%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적극형 포트폴리오는 장기적으로 초과 성과를 목표로 한다. 세계 경제를 이끌 신성장 산업 등에 투자하는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를 담을 수 있다. 일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6개월~1년 등 단기적으로 사거나 팔기도 한다.

이때 안정형 포트폴리오와 적극형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안정형을 적극형보다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안정형 포트폴리오는 70%, 적극형 포트폴리오는 30%로 자금을 할당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둘로 나누면 안정적인 수익과 초과 수익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투자 목적의 혼동을 예방할 수 있다. 리스크 관리나 상황에 맞는 자산 운용, 효율적인 자산관리 등이 가능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안정형과 적극형으로 투자 목적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다면 설사 투자위험이 큰 자산에 대한 비중을 늘리더라도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 중장기적인 비중 조절을 통해 자산 운용 과정을 엄격하게 조정할 수 있으며 투자 성향이나 상황에 따른 맞춤 자산 운용도 가능하다. 결국 효율적인 연금 운용을 위해서는 자금을 둘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경영학(연금금융) 박사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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