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학력 땄다" 산으로 간 사람들

김홍준 2023. 8. 2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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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사람들’이 있었다.
산에는 섭씨 34도의 폭염이 두르고 있었고, 95%의 습도가 에워싸고 있었다. 차라리 뜨끈한 물속이었다. 7조 사람들은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작렬하는 햇빛에 바위가 달궈졌다. 마치 프라이팬 같았다. 7조 사람들은 바위 열(熱)을 피하느라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7조 이호석 강사가 지난 8월 16일 전북 완주군 대둔산도립공원에서 등반 중 집중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그 산은 ‘호남의 금강’이라 부르는 대둔산(878m). 지난 14일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7조 5명은 전족(纏足) 같은, 발을 꽉 깨무는 암벽화를 신고 대둔산의 가파른 화강암을 꼭꼭 밟고 있었다. 강경은(42)씨가 말했다, “죽을 것 같다”고. 그러면서 “즐겁다”라고도 했다. 뜨끈한 물속 같은 날씨와 프라이팬 같은 바위에서 이들은 자학(自虐)과 쾌락(快樂)을 탐미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왜 한여름의 암벽에 함께 매달리고 있었을까. 코오롱등산학교(코등) 암벽반을 통해 등산학교를 들여다보기 위해 중앙SUNDAY가 이들과 덩달아 함께했다.
# 암벽 등반 무경험자 중 맨 끝의 7조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이런 대답까지 원하지는 않았다. 조지 맬러리(영국·1886~1924)가 영국의 에베레스트 3차 원정을 앞두고 했다는(뉴욕타임스 기자가 기사의 극적 효과를 위해 지어냈다는 설도 있다) 명언이지만, 클리셰(cliché·상투어)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대둔산 일대에서 코오롱 등산학교 암벽등반 39기 7조 교육생들이 매듭을 배우고 있다. 얼굴 보이는 왼쪽부터 유현종 강사, 한동우·김선화강경은씨. 최기웅 기자

“더 늦기 전에요. 왜 이제 왔나 싶네요.”
7조 막내이자 39기 31명의 막내인 강주호(29)씨가 이렇게 말했다. 7조 최고령이자, 역시 39기 최연장자인 김선화(68)씨도 같은 말을 했다. 또 다른 상투어가 아닐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조·2조도 아니고 머나먼 7조다.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코등 암벽반은 1~4조가 경험자, 5~7조가 입문자로 구성됐다. 12일에 ‘테스트’를 거쳐 조 편성이 이뤄졌다. 마지막 조가 7조였다. 양유석 교무는 “단계별, 맞춤형 교육을 위한 편성인데, 경험자라도 자신이 기본부터 착실히 배우고 싶어 입문자 조로 자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전국 등산학교 중 활발한 교육을 펼치는 곳은 20여 개.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립등산학교, 개인의 이름을 학교명으로 내세운 권기열·정승권 등산학교, 지역의 대구·부산·한라산 등산학교 등도 있다. 한 월간지는 ‘코오롱등산학교와 한국등산학교는 우리나라 등산학교의 양대 산맥’으로 정리했다.
지난 8월 15일 오전 전북 완주군 운주면 천등산 일대에서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학생들이 암벽등반을 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이지은(맨 오른쪽) 강사와 교육생들이 섭씨 34도, 습도 90%까지 치솟은 지난 8월 15일 전북 완주군 천등산 암벽 등반에 나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아웃도어 인구는 3229만명(산림청,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숲길 체험). 이 중 극히 일부가 등산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10개 과정을 연 코등의 경우에는 418명이 교육을 받았다. 1985년 개교한 코등의 총 교육생은 올해 8월 현재 2만1070명에 이른다. 의무 교육도 아닌데, 이들은 왜 등산학교를 찾았을까. 민영주(49·7조)씨가 말했다. “옷 입는 법, 배낭 싸는 법부터 바위 딛는 법, 로프 사리는 법까지 차근차근 배우고 싶었다”고. 옷은 걸쳐 입고, 배낭은 싸고, 바위는 발로 딛고, 로프는 둥글게 말면 되는 것 아닌가.

“등산에는 다 ‘법’이 있고,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윤재학(73) 코등 교장의 말이다. 윤 교장은 “등산은 시스템이다”라며 “그 시스템을 가르치는 곳이 등산학교”라고 말했다. 옷은 여러 개를 겹쳐 있는 레이어링(layering) 시스템을 적용해 보온을 극대화하고, 배낭에는 가벼운 짐을 아래에, 무거운 짐은 위에 넣어야 무게 중심이 잘 잡히며, 바위를 디딜 때는 발을 11자로 만들어야 미끄러짐이 덜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심지어 불가피한 용변 처리는 땅을 30㎝ 파야 한다, 한여름 행동식으로 짜 먹는 것(스틱)을 살짝 얼려 먹는 것이 좋다는 꿀팁도 알려준다.

지난 8월 11일부터 17일까지 전북 완주군 대둔산에서 열린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교육에 사용된 교구. 바위 모양 그대로 만들어 암벽 장비를 어떻게 설치하는지 이해를 돕도록 했다. 김홍준 기자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교육생들이 지난 8월 14일 전북 완주군 대둔산 교육장에서 오후 10시까지 이어진 확보 시스템 강습을 받고 있다. 천막에 비친 실기 체험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어, 이건 처음 보는 방법인데….”
14일 오후 9시. 낮에 뜨거운 바위에서 혈투를 벌인 교육생들이 저녁에는 매듭과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암벽 등반 중 확보(암벽 등반 중 장비를 사용해 안전하게 자리를 잡거나 다른 대원이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 방법의 하나인 ‘쿼드 앵커 시스템’은 최근에 개발됐다. 암벽 등반 중 하강 백업 시스템인 ‘오토매틱 블록’도 2010년 이후에야 널리 퍼졌다. 상황은 필요를 낳았고, 필요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등산화만 봐도 5년 전의 제품보다 접지력(接地力·원래는 타이어가 도로 면에 닿는 힘을 뜻함)은 향상하면서 무게는 덜어냈다. 배낭 안에 쏙 들어가는 ‘접는 스틱’은 10년 전에는 세상에 없었다. 등반자 추락 시 자동으로 로프를 잡아주는 장비도 개발됐다.
“하지만, 사용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죠.”
양유석 교무는 “그래서 등산학교는 등산의 방법과 신기술을 알려주고 숙지시켜 주며,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첨병”이라며 “산을 대하는 태도와 산악 문화(문학·음악·역사 등)도 가르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5일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7조 교육생들이 대둔산 도립공원 내 천등산에서 등반 중 손을 흔들고 있다. 김홍준 기자

# “고도의 멘탈 필요“ ”두려움 극복이 과제“
7조 사람들은 술렁였다. 2일 암벽반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교육 내용을 미리 찾아봤고, 지식적인 면보다 두려움 극복이 과제였다“고 강주호씨가 말했다. 김선화씨도 “고도의 멘탈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 했다. 강경은씨도 “동네 실내암장에서 벗어나니 힘들 것 같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세 명은 “그런데 되더라”고 입을 모았다. 양유석 교무는 “무경험자라도 충분히 교육 과정을 수료할 수 있다”며 “문제는 의지”라고 조언했다.

그 ‘의지’를 가진 사람 중 여성이 늘었다. 올해 코등의 전체 교육과정 중 여성이 40%다. 지난 2019~2022년 평균 33.7%를 훌쩍 넘는다. 특히 올해 정규반(등산 전문교육 과정 중 초기반)은 코등 38년 사상 처음으로 여상(54%)이 남성(46%)을 앞질렀다. 기초 등산을 가르치는 스마트등산교실(55%), 하루 20km 이상의 산행 기술을 가르치는 장거리하이킹(50%)도 여성 비율이 높다.

최근 등산학교가 젊어지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48.54세였던 코등 교육 과정 연령은 올해 43.87세로 낮아졌다. 윤재학 교장은 “실내(인공)암장을 점령한 20·30세대가 자연암장을 경험하기 위해 등산학교를 찾아오면서 평균 연령을 확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등산학교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여가 활동의 다양화와 전문화는 점점 강해지는 추세”라며 “중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등산도 여성과 젊은 층이 전문적인 길로 가기 위해 학교로 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중 일부는 등산학교의 ‘연계상품’을 찾는다. 양유석 교무는 “전문적인 등산 교육은 기초반-정규반-암벽반(정규반 시즌이 가을이면 설상반)-설상반(정규반 시즌이 가을이면 이듬해 암벽반)으로 이어지는데, 그 단계를 밟아 현재의 암벽반에 온 사람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7조의 한동우(51)씨가 그렇다. 정규반-설상반을 거친 그는 ”기술과 지식을 배우기도 하지만, 강사에 대한 신뢰와 프로그램의 안전성을 고려하고 있다”며 ”다른 등산학교 교육생들도 자신의 등산학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2015년까지 정규반, 암벽반 등 5개였던 코등의 교육 과정은 현재 18개로 세분됐다. 과정별 수강 인원은 되레 줄여 교육의 집중도를 높였다. 그만큼 전문성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교육생 손인혁씨가 지난 8월 16일 전북 완주군 대둔산에서 암벽 등반 중 집중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등산학교에는 연계상품 중 하나를 계속 찾는 ‘재구매’도 있다. 같은 과정을 일정 기간 간격을 두고 참여하는 경우다. 이번 코등 암벽반 31명 중 5명이 과거 암벽반 수강생이었다. 재구매율 16%다. 이모(61)씨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 5년마다 오고 있다”고 말했다. 등산학교 브랜드 충성도도 작용한다는 게 다른 교육생의 말이다. 그래서 기업의 고객 경험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순고객추천지수(NPS)도 등산학교에서 활용하고 있다. NPS는 고객의 기업 충성도를 측정한 지표로, 숫자(-100에서 +100)가 높을수록 해당 상품에 대한 추천 의향이 높다는 의미다. +50이 넘으면 높은 편인데, 코등의 올해 NPS는 +82에 이른다. 올바른 등산 지식과 문화를 전달한다는 ‘공교육’과 교육생을 위한 맞춤 프로그램 마련이라는 ‘사교육’이 공존하는 곳이 등산학교다.
# 암벽 등반 제대로 배우니 더 안전하게 다닐 듯
“하나, 둘, 셋!”
이 소리는 무엇인가. 16일 오후 다시 대둔산. 달궈진 프라이팬 바위에서 코등 암벽반 39기는 ‘밀당’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1)는 자신의 몸을 밀어 올리고, 누군가(2)는 누군가(1)의 몸(사실은 안전벨트)에 걸린 로프를 당겼다. 이 소리는 박자맞춤. 끌어올려 주겠다는 뜻의 응답이었다. 그 전에 누군가(1)의 “줄 당겨”라는 절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유석 교무와 함께 긴급 편성된 ‘8조’였던 기자는 어느 조에서 나온 소리였는지 알 수 없었다. 강경은씨는 “우리 7조는 ‘줄 당겨’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순간, 7조를 맡은 유현종·이호섭 강사는 미소를 지으며 만 산을 쳐다봤다.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39기 6조와 7조 교육생들이 섭씨 33도, 습도 95%까지 치솟은 지난 8월 16일 전북 완주군 대둔산 암벽 등반 중 환호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어쨌든 암벽반 6박 7일이 끝났다. 암벽을 처음 접한 7조 사람들은 ‘최종학력 등산학교’가 됐다. 한동우씨는 “바위만 만나면 어쩔 줄 몰라서 동료들에게 미안했는데, 강사들이 (7조 수준에 맞춰) 차근차근 알려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게 되더라”며 “무(경험)에서 유(경험)를 창조하니, 느슨해진 정신을 다잡게 됐다”고 전했다. 민영주씨는 “걷는 산행만 하다가 암벽 등반은 난생처음이라 주위에서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제대로 배우고 나니 ‘걷는 산행’에서 만나기도 하는 바위 구간을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겠다”고 말했다. 연계상품 검색이 이어지고, 재구매율·NPS는 높아질까.
대둔산에 ‘7조 사람들’이 있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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