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학력 땄다" 산으로 간 사람들
‘7조 사람들’이 있었다.
산에는 섭씨 34도의 폭염이 두르고 있었고, 95%의 습도가 에워싸고 있었다. 차라리 뜨끈한 물속이었다. 7조 사람들은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작렬하는 햇빛에 바위가 달궈졌다. 마치 프라이팬 같았다. 7조 사람들은 바위 열(熱)을 피하느라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이런 대답까지 원하지는 않았다. 조지 맬러리(영국·1886~1924)가 영국의 에베레스트 3차 원정을 앞두고 했다는(뉴욕타임스 기자가 기사의 극적 효과를 위해 지어냈다는 설도 있다) 명언이지만, 클리셰(cliché·상투어)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요. 왜 이제 왔나 싶네요.”
7조 막내이자 39기 31명의 막내인 강주호(29)씨가 이렇게 말했다. 7조 최고령이자, 역시 39기 최연장자인 김선화(68)씨도 같은 말을 했다. 또 다른 상투어가 아닐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조·2조도 아니고 머나먼 7조다.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코등 암벽반은 1~4조가 경험자, 5~7조가 입문자로 구성됐다. 12일에 ‘테스트’를 거쳐 조 편성이 이뤄졌다. 마지막 조가 7조였다. 양유석 교무는 “단계별, 맞춤형 교육을 위한 편성인데, 경험자라도 자신이 기본부터 착실히 배우고 싶어 입문자 조로 자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아웃도어 인구는 3229만명(산림청,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숲길 체험). 이 중 극히 일부가 등산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10개 과정을 연 코등의 경우에는 418명이 교육을 받았다. 1985년 개교한 코등의 총 교육생은 올해 8월 현재 2만1070명에 이른다. 의무 교육도 아닌데, 이들은 왜 등산학교를 찾았을까. 민영주(49·7조)씨가 말했다. “옷 입는 법, 배낭 싸는 법부터 바위 딛는 법, 로프 사리는 법까지 차근차근 배우고 싶었다”고. 옷은 걸쳐 입고, 배낭은 싸고, 바위는 발로 딛고, 로프는 둥글게 말면 되는 것 아닌가.
“등산에는 다 ‘법’이 있고,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윤재학(73) 코등 교장의 말이다. 윤 교장은 “등산은 시스템이다”라며 “그 시스템을 가르치는 곳이 등산학교”라고 말했다. 옷은 여러 개를 겹쳐 있는 레이어링(layering) 시스템을 적용해 보온을 극대화하고, 배낭에는 가벼운 짐을 아래에, 무거운 짐은 위에 넣어야 무게 중심이 잘 잡히며, 바위를 디딜 때는 발을 11자로 만들어야 미끄러짐이 덜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심지어 불가피한 용변 처리는 땅을 30㎝ 파야 한다, 한여름 행동식으로 짜 먹는 것(스틱)을 살짝 얼려 먹는 것이 좋다는 꿀팁도 알려준다.
14일 오후 9시. 낮에 뜨거운 바위에서 혈투를 벌인 교육생들이 저녁에는 매듭과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암벽 등반 중 확보(암벽 등반 중 장비를 사용해 안전하게 자리를 잡거나 다른 대원이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 방법의 하나인 ‘쿼드 앵커 시스템’은 최근에 개발됐다. 암벽 등반 중 하강 백업 시스템인 ‘오토매틱 블록’도 2010년 이후에야 널리 퍼졌다. 상황은 필요를 낳았고, 필요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등산화만 봐도 5년 전의 제품보다 접지력(接地力·원래는 타이어가 도로 면에 닿는 힘을 뜻함)은 향상하면서 무게는 덜어냈다. 배낭 안에 쏙 들어가는 ‘접는 스틱’은 10년 전에는 세상에 없었다. 등반자 추락 시 자동으로 로프를 잡아주는 장비도 개발됐다.
양유석 교무는 “그래서 등산학교는 등산의 방법과 신기술을 알려주고 숙지시켜 주며,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첨병”이라며 “산을 대하는 태도와 산악 문화(문학·음악·역사 등)도 가르친다”고 말했다.
# “고도의 멘탈 필요“ ”두려움 극복이 과제“
7조 사람들은 술렁였다. 2일 암벽반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교육 내용을 미리 찾아봤고, 지식적인 면보다 두려움 극복이 과제였다“고 강주호씨가 말했다. 김선화씨도 “고도의 멘탈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 했다. 강경은씨도 “동네 실내암장에서 벗어나니 힘들 것 같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세 명은 “그런데 되더라”고 입을 모았다. 양유석 교무는 “무경험자라도 충분히 교육 과정을 수료할 수 있다”며 “문제는 의지”라고 조언했다.
그 ‘의지’를 가진 사람 중 여성이 늘었다. 올해 코등의 전체 교육과정 중 여성이 40%다. 지난 2019~2022년 평균 33.7%를 훌쩍 넘는다. 특히 올해 정규반(등산 전문교육 과정 중 초기반)은 코등 38년 사상 처음으로 여상(54%)이 남성(46%)을 앞질렀다. 기초 등산을 가르치는 스마트등산교실(55%), 하루 20km 이상의 산행 기술을 가르치는 장거리하이킹(50%)도 여성 비율이 높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여가 활동의 다양화와 전문화는 점점 강해지는 추세”라며 “중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등산도 여성과 젊은 층이 전문적인 길로 가기 위해 학교로 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중 일부는 등산학교의 ‘연계상품’을 찾는다. 양유석 교무는 “전문적인 등산 교육은 기초반-정규반-암벽반(정규반 시즌이 가을이면 설상반)-설상반(정규반 시즌이 가을이면 이듬해 암벽반)으로 이어지는데, 그 단계를 밟아 현재의 암벽반에 온 사람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7조의 한동우(51)씨가 그렇다. 정규반-설상반을 거친 그는 ”기술과 지식을 배우기도 하지만, 강사에 대한 신뢰와 프로그램의 안전성을 고려하고 있다”며 ”다른 등산학교 교육생들도 자신의 등산학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2015년까지 정규반, 암벽반 등 5개였던 코등의 교육 과정은 현재 18개로 세분됐다. 과정별 수강 인원은 되레 줄여 교육의 집중도를 높였다. 그만큼 전문성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하나, 둘, 셋!”
이 소리는 무엇인가. 16일 오후 다시 대둔산. 달궈진 프라이팬 바위에서 코등 암벽반 39기는 ‘밀당’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1)는 자신의 몸을 밀어 올리고, 누군가(2)는 누군가(1)의 몸(사실은 안전벨트)에 걸린 로프를 당겼다. 이 소리는 박자맞춤. 끌어올려 주겠다는 뜻의 응답이었다. 그 전에 누군가(1)의 “줄 당겨”라는 절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유석 교무와 함께 긴급 편성된 ‘8조’였던 기자는 어느 조에서 나온 소리였는지 알 수 없었다. 강경은씨는 “우리 7조는 ‘줄 당겨’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순간, 7조를 맡은 유현종·이호섭 강사는 미소를 지으며 만 산을 쳐다봤다.
대둔산에 ‘7조 사람들’이 있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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