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리미엄의 원조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 영원식당

김명희 기자 2023. 8. 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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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이자 빠숑이라는 필명으로 부동산 시장에 관한 인사이트를 전달하고 있는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과 함께 맛집에서 시작하는 동네 임장기를 연재한다.

더현대서울이 MZ들을 불러 모으는 미식 핫플로 이름을 날리기 훨씬 전부터 여의도는 맛집이 많기로 이름난 동네였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금융맨, 밤낮없이 시간에 쫓기는 연예인과 방송인들의 한 끼를 책임지며 명성을 쌓아온 곳들이다. 이들 맛집은 대부분 아파트 상가에 자리하고 있다. 증권사와 방송국이 차례로 들어서며 여의도가 급성장하던 1990년대엔 "여의도에선 소금국만 팔아도 장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30~40년 세월을 거치며 옥석이 가려져 지금 남은 식당들은 찐 맛집으로 인정받은 곳들이다.
여의도 샐러리맨과 방송인들의 맛집 영원식당의 메뉴와 노포의 아우라가 풍기는 매장 입구 모습.
이들 식당 중 서울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영원식당은 연예인 맛집으로 여러 번 방송을 타면서 더 유명해졌다. 감칠맛 나는 육수에 적당한 두께로 떠 넣어 입에 착 감기는 수제비, 강원도에 왔나 싶을 정도로 깊은 맛을 내는 감자전과 촉촉한 파전, 마늘 듬뿍 들어간 얼큰한 닭볶음탕 등 이 집의 메뉴들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입맛에 맞춰 진화하고 검증받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만족시키는 대중적인 맛을 획득했다. 오전 11시 오픈에 맞추지 못하면 순식간에 자리가 차지만, 샐러리맨들의 점심을 책임지며 다져진 내공 덕분에 음식 나오는 시간이 빛의 속도로 빨라 대기가 금방 빠진다.

여의도 상가 맛집들이 달인의 경지에 오르는 동안 1970년대 '그때 그 시절’ 첨단 건축 공법과 최신식 설비의 결정체였던 여의도 아파트들은 어느덧 재건축 연한을 넘겨 환골탈태를 앞두고 있다. 마포대교 남단에서 원효대교 남단까지 한강 변을 따라 이어지는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는 시범, 삼익, 한양, 서울 등 16개 단지 약 7600세대에 이른다. 상당수 아파트가 영구 한강 뷰가 가능한 데다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과 5호선 여의나루역 사이에 위치해 더블역세권이다. 수도권 전역으로 연결되는 여의도환승센터가 도보권에 있으며, 바로 앞으로는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이어져 자동차를 통한 이동도 쉽다. 향후 경전철 서부선과 신림선, 신안산선, GTX-B 등이 개통 혹은 연장될 계획이라 미래가치도 기대된다. 더현대서울, IFC몰 등 생활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으며 여의도공원과 한강 산책로 등 자연환경을 즐기기에 좋다.

평균 나이 쉰을 넘긴 서울 대단지 아파트의 원조

시범아파트의 널찍한 복도 베란다(왼쪽)와 삼부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브라이튼 여의도의 모습.
여의도 아파트들은 주거 문화의 변화와 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망을 보여주는, 아파트 역사 그 자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아파트는 1962년 준공된 마포아파트지만,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로 꼽히는 곳은 1971년 지어진 여의도 시범아파트다. 24개 동 1584세대 규모의 시범아파트는 12~13층이라는 당시로선 초고층 설계에 엘리베이터, 보일러, 온수시설 등 최신식 설비가 모두 갖춰진 아파트였다. 김학렬 소장에 따르면 상가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됐으나 운영에 상당한 비용이 들었던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철거됐다. 엘리베이터는 당시 입주민들에게도 생소한 시설이라 입주 후 6개월 정도까지 안내원이 상주하며 이용법을 익히도록 했다고.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주하는 세대가 대부분이었던 만큼 베란다 공간을 넉넉하게 만들어 장독대 등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 당시 자가용을 보유한 세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차 공간을 많이 두지 않았다. 대신 아파트에는 수영장, 놀이터 등 지금으로 말하자면 커뮤니티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1980년대 들어 모든 집마다 자가용을 보유하게 되면서 주차난이 일자 이런 시설들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게 됐다고 한다.

"1970년 4월 와우아파트가 지어진 지 6개월 만에 붕괴되면서 부실시공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죠. 서울시가 튼튼한 건축물의 시범을 보이겠다며 지은 아파트가 바로 이 시범아파트입니다. 흔치 않은 기둥식 구조에, 이후 지어진 아파트들에 비해 층간소음도 크지 않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시범아파트 완공 이후 고층 건물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면서 여의도에는 초고층 건축물과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범아파트는 156㎡가 571만 원, 60㎡가 212만 원 선에 분양됐는데, 입주 시작하고 두 달 만에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랐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2만 원 남짓이었으니, 시범아파트 소형 평수를 분양받은 사람도 10년치 연봉 이상의 프리미엄을 얻은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부동산 투기 붐으로 이어졌다.

1976년 겨울, 40년 만의 혹한이 몰려와 난방이 편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듬해 분양된 목화아파트는 80:1의 높은 경쟁률 끝에 분양 직후 150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여기에 중동 건설 특수를 타고 들어온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면서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때 '큰손’ '복부인’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다. 프리미엄을 쫓아 이사를 거듭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아파트를 3일 만에 팔면 '업자’, 3개월 만에 팔면 '실수요자’, 3년 만에 팔면 '바보’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에 정부는 1977년 모든 신축 주택에 대해 3.3㎡당 55만 원의 분양가 상한을 적용했다. 이후 분양가상한제는 주택 경기에 따라 폐지와 부활을 거듭하다 현재는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등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총 7600세대 재건축 예정, 건설사 수주전 치열

여의도 재건축 추진 아파트 중 처음으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목화아파트
여의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재건축 논의가 시작됐고, 이 가운데 상업지역에 속했던 백조아파트(2005년 롯데캐슬엠파이어), 미주아파트(2005년 롯데캐슬아이비), 한성아파트(2008년 여의도자이)는 일찌감치 주상복합으로 변신 완료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의도 통개발 논란, 한강변 아파트 층고 제한 등으로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올해 4월 여의도 아파트지구를 9개 특별계획구역으로 구분, 용적률을 최대 800%까지 올릴 수 있는 '여의도 아파트 지구단위계획’을 공개하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중이다. 여기에 동여의도 일대 11만586㎡는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돼 용적률 최대 1200%, 350m의 초고층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사람으로 치면 평균 나이 쉰에 가까운 여의도 아파트들은 재건축이 임박했음에도 다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래카드도 별로 없이 조용한 분위기다. 재건축도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까. '서울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상징적인 입지에 아파트 지구단위계획과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 계획으로 사업성까지 높아지면서 재건축에 속도가 붙고 있으며, 무엇보다 건설사의 수주전이 활발하다.

현재 재건축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한양아파트다. 1975년 준공된 8개동 588세대의 한양아파트는 3종 일반주거지역(용적률 최고 300%)에서 일반상업지역(용적률 최고 600%)으로 종상향돼 지하 5층~지상 56층 5개 동, 956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지난 8월 1일 열린 여의도 한양아파트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호반건설, HDC현대산업개발, 효성중공업 등 10개사가 참여했다. 김학렬 소장은 "여의도 재건축 1호인 한양아파트 사업을 따낸다면 후속 사업지 수주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사들의 각축전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바라본 강북의 풍경. 북한산부터 남산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1976년 준공된 4개 동 373세대 규모의 공작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지하 5층~지상 49층 3개 동, 570세대와 근린생활시설로 거듭난다. 4일 열린 공작아파트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호반건설, HDC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효성중공업, 화성산업 등 12개사가 참석했다.

여의도 재건축의 대어로 꼽히는 시범아파트는 2017년 안전진단을 통과한 데 이어 2022년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돼 총 1584가구 규모를 헐고 최고 65층, 2500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시범아파트는 '미래 여의도의 도심 기능을 지원하고 수변으로 열린 도심 주거지’를 목표로 △국제금융지구를 지원하는 도심형 주거 및 복합 기능 도입 △한강 변 수변문화 거점 조성 △한강 연결성 강화를 위한 지구 보행 네트워크 확립 △조화로운 스카이라인과 입체적 수변 도시경관 창출 등 4가지 원칙에 따라 개발된다. 인접한 63스퀘어(높이 250m) 및 파크원(높이 333m)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200m 높이 범위 내(지상 60~65층)에서 U 자형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계획대로 지상 최고 65층이 추진된다면 서울 내 재건축사업 중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된다. 이 외에 여의도 목화아파트는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9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광장·대교·삼부아파트는 재건축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상태다. 김 소장은 "시범아파트는 규모가 큰 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양, 공작 등 인근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통해 차곡차곡 시세가 높아져 시범아파트에서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를 써온 여의도 아파트들이 재건축 과정에서 또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낼지, 환골탈태한 여의도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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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사진 이상윤 

김명희 기자 may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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