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흥행 1위 <밀수>, 류승완 감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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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여성 액션이다. 강한 남성들의 치열한 액션이 주특기였던 류승완 감독이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이후 의미 있는 도전에 나섰다. 우연히 읽은 기사의 “1970년대 해녀가 밀수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는 한 문장에서 힌트를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 범죄 활극이다. 배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까지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배우들의 의기투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캐스팅 라인업만큼 화려한 ‘류승완 사단’이 영화에 힘을 보탰다. 그도 그럴 것이 류승완 감독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최정예 제작진이 한데 모였다. 전작 영화 <베테랑> <모가디슈>에 참여하며 노하우를 키운 촬영, 조명, 편집, 분장, 음향 등 영화 제작의 전반을 책임지는 이들이 다시 한번 뭉쳤다.
“재탕만은 피하고 싶다”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개봉을 앞두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웃음) 수치로 나타나는 성적보다 중요한 건 아무래도 관객 반응이다. 영화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가장 궁금하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더 문>(감독 김용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와 경쟁 구도가 형성됐는데, 정작 영화를 만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쟁을 생각하면 겁부터 난다. 나는 경쟁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이길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류승완이기에 말할 수 있는 자신감 같다.
개봉 시기가 겹치는 작품은 늘 있었다. <주먹이 운다>는 <달콤한 인생>과 같은 날 개봉했고, <피도 눈물도 없이>는 <복수는 나의 것>과 맞붙었다. 심지어 장르까지 비슷했다. 이번에 공개된 네 편의 영화는 저마다 개성이 달라서 다행이다.(웃음) 엄태화·김용화 감독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지만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경쟁을 논할 때가 아니다. 일단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
<밀수>를 통해 수중 액션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새로움은 항상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1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작품을 기대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선입견을 갖게 된 관객도 있다. 같은 장르 영화라고 해도 재탕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끊임없이 전작과 다른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발전해나가는 게 숙제다. 수중 액션을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잘 못 봤던 스토리, 액션이라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에 대한 기억이 있나?
실제로 생필품, 옷, 음식 등이 밀수품이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다. 당시엔 바나나도 밀수품이라고 했다.(웃음) 부유한 친구네 집엔 일제 가전제품들이 있었다. 이것이 다 밀수품인 거다. 밀수라는 게 낯선 단어 같지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주변에서 밀수품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나를 이번 영화로 이끈 것 같다.
배우 김혜수와 염정아를 투 톱 주연으로 내세웠다.
<피도 눈물도 없이> 때부터 여성 누아르에 관심이 있었다. 여성들의 우정을 그리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김혜수와 염정아가 떠올랐다. 감사하게도 김혜수, 염정아라는 거대한 봉우리가 함께했다. 두 배우의 열렬한 팬이었다. 김혜수 배우는 연출부 시절 때부터 동경하던 선배다. 김혜수 배우가 모니터에 잡히면 화면이 밝아지더라.(웃음) 흠모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배우다. 염정아 배우는 매번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장화, 홍련>을 보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여름 극장가가 뜨겁다. 본의 아니게 경쟁 구도가 형성돼 있더라. 경쟁을 생각하면 겁부터 난다. 나는 경쟁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이길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해녀 팀은 수중 액션을 위해 3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이어갔다고 들었다.
배우 반 이상이 수영을 못해 영화가 엎어지는 줄 알았다.(웃음) 염정아 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다. 김혜수 배우는 수중 훈련 때 공황 증세를 겪었는데 해녀들과 함께하면서 서서히 극복해나가더라. 김희진 코치를 중심으로 한 수중 싱크로나이즈 팀의 공이 컸다. 무술감독과 상의하면서 물속에서 가능한 액션을 찾고, 배우들과 촬영 전까지 연습을 이어갔다.
배우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도 함께했는데 이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조인성은 소싯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웃음) 극 중 ‘권 상사’는 멋있는 인물이다. 권 상사가 지닌 멋과 품위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조인성 배우가 다 채워줬다. 박정민과 고민시는 천재다. 두 배우의 공통점은 경쟁심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연기에 호기심이 많고 디렉팅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박정민 배우는 굉장히 내성적인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180도 달라진다. 고민시 배우는 ‘리틀 염정아’다. 편하게 연기하는데 에너지가 상당하다.
배우들이 말하길 류승완 감독의 현장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런가.(웃음) 내가 만든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좋은 스태프와 배우를 캐스팅하면 감독의 역할은 거의 끝났다고 본다. 현장에서 ‘NG’와 ‘OK’를 구분할 줄 아는 안목만 있으면 된다. 그 외에는 현장에 모인 스태프와 배우들의 몫이다. 내가 경험한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 감독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한다.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열중하는 모습을 봐왔다. 특히 조연·단역 배우들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다. 이름 없이 번호로 매겨지는 배역까지도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연기를 하더라. 매 순간 감탄한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경험치가 쌓여도 항상 실수할 수 있고 틀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준비는 연출에 임하는 나의 태도다.
또한 현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연출자로서 해줄 수 있는 리액션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
내 임무 중 하나다”
유독 팀워크가 좋았던 현장이기도 했다던데 비결이 뭔가?
아무도 기 싸움을 하지 않더라. 영화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배우들 사이의 묘한 경쟁 구도가 있다. 심지어 카메라를 두고 경쟁하기도 한다. 그러나 <밀수> 촬영 현장에선 그런 게 없었다. 호흡이 잘 맞았다는 정도가 아니다. 배우들의 인품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김혜수·염정아 배우가 정말 잘 이끌었다. 연출자로서 배우들이 서로 독려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도 편했다.
<밀수>는 장기하의 음악감독 데뷔작이기도 한데 신인 감독을 기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우리 영화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줄 거란 기대가 있었다. 1970년대 밴드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뮤지션이지 않나. 앞서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장기하 감독의 ‘풍문으로 들었소’를 인상 깊게 듣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탁했는데 흔쾌히 응해줬다. 결과적으로 장기하 감독과의 작업이 좋았다. 반면에 장기하 감독은 두 번 다시 영화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웃음)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앵두’, ‘연안부두’ 등 류승완 감독이 선곡해둔 영화음악도 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미리 선곡해뒀다. 장면과 대사별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정해둔 것이다. 대본 리딩과 촬영 현장에서도 항상 음악을 재생시켰다. 김혜수 배우가 선곡 리스트를 보더니 “나이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니냐.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다”고 농담하더라. 선곡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아버지께서 좋아하신 음악을 같이 듣고 성장했다. 당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악들이다.
“내가 전도연에게 미안한 이유”
메가폰을 잡은 지 어느덧 2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처음과 같은 고민을 한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경험치가 쌓여도 항상 실수할 수 있고 틀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준비는 연출에 임하는 나의 태도다. 내 현장은 노동의 강도가 세다. 그리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 편이다. 따라서 현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연출자로서 해줄 수 있는 리액션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 준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내가 가진 임무 중 하나다.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있나?(웃음)
<피도 눈물도 없이>를 다시 찍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웃음) <밀수>와 다른 결이지만, 여성이 극을 이끄는 영화였다. 그런데 당시의 내가 여러 방면으로 어설펐다. 영화를 만드는 기술도 지금보다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주인공이었던 전도연 배우에게 특히 미안하다.(웃음)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배우들을 몰아붙이면서 촬영했던 거 같다. 모르면 날 무시할 거 같다는 미성숙한 생각을 했다. 지금이었다면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했을 텐데 말이다.
조인성이 최근 인터뷰에서 “류승완 감독은 영화밖에 모른다”고 말하더라. 쉬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만드는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이 악물고 영화를 만든다고 다 좋은 건 아니더라.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내 의지와 노력을 느끼진 않는다. 그냥 영화를 보는 거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으니 잘 봐달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만드는 연출자 모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최선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대신 재미있게 만들었으니, 재미있게 봐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OTT가 보편화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이 줄었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굉장히 중요한 화두다. 나는 아직도 큰 스크린, 음향 시설이 갖춰진 공간에서 다른 관객들과 다 함께 보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감히 부탁드리는데, 영화는 극장에서 보셨으면 좋겠다.(웃음) 물론 스마트폰으로 보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가 잘 구현되는 곳에서 보셨으면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극장이라는 공간이 변화를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사라질 것 같진 않고, 형태가 변할 것 같다.
관객들에게 본인의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나?
영화를 보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밀수>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대화 주제가 다양할 것 같다. 음악, 패션, 액션, 스토리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연출자가 바라는 일은 없을 거다.
다음 작품은 언제 만날 수 있나?
<베테랑> 속편 촬영을 마친 상태다. 후반 작업 과정이 남아 있다. <베테랑>은 겨울 영화다. 아마 빠르면 이듬해 겨울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김태이(프리랜서) | 사진 : NEW, ㈜외유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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