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겪는 D공포에 中도 '당혹'…韓경제 '최악 시나리오' 펼쳐지나
[편집자주] 'G2' 중국 경제가 위태롭다. 부동산을 동력 삼아 달려왔지만, 부동산에 발목이 잡혔다. 부동산발 금융 위기론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시장이 보다 주목하는 것은 중국의 '내수 체력'이다. 부진한 소비가 발목을 잡으며 디플레이션의 늪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까.
헝다와 중국 부동산 업계1위를 다투던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일 비구이위안은 달러화 채권 10억달러의 이자 2250만달러(약 297억원)을 지급하지 못했고, 30일의 유예기간 내 이자를 갚지 못하면 결국 디폴트를 맞게 된다.
2021년 9월 헝다그룹의 파산위기 이후 한 숨 돌리려나 싶을 때 비구이위안 위기까지 터진 것이다. 헝다와 비구이위안의 자산 규모가 각각 1조8380억위안(331조원), 1조7440억위안(314조원)으로 민영 부동산업체 1, 2위인 점도 중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 1978년 이후 40여년간 고속성장한 중국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문을 열어젖힌 이후 중국은 40여년간 호황을 누려왔다. 중국 부동산 위기에서 1990년의 일본을 떠올리는 건 당시 일본과 지금의 중국 모두 장기간에 걸친 고속성장을 통해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계의 굴뚝으로 성장을 견인해온 중국이 뒷걸음칠 경우 전 세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수십 년에 걸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에 시달렸다. 고령화·저출산 등 인구학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최근에야 간신히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중국이 일본과 다른 점도 있다. 먼저 1990년 일본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만5371달러로 미국(2만3888달러)을 넘어섰을 정도로 일본은 이미 선진국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는 1만2720달러로 미국(7만6398달러)의 6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이 중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몇 년간 조정을 받아온 중국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 과거의 일본만큼 극심하지 않다는 점도 다르다. 지난 7월 베이징시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평당 25만1000위안(약 4520만원)에 달하지만, 버블 정점 시기의 일본 부동산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당시 도쿄의 땅을 다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다.
중국 역시 위기의 진원이 부동산이지만, 부동산 버블보다는 부동산 업체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위기라는 점도 일본과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헝다와 비구이위안의 부채는 각 2조4370억위안(약 439조원)과 1조4350억위안(약 258조원)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규모다.
◆ 디레버리징, 디플레이션… 'D'가 문제
현재 중국은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당면 과제이기 때문에 헝다, 비구이위안 등 대형 부동산업체를 지원할 여력이 없다. 블룸버그 추산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말 중국의 GDP 대비 총부채(정부·기업·가계) 비율은 281.5%까지 상승했다. 자금 여유가 있더라도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들 업체를 구제할 경우, 부동산업체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예상되는 것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소비 부진과 물가하락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올해 초 제로코로나 종료 후 소비회복을 기대했지만, 지난 7월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2.5% 증가에 그치며 시장 전망치(4%)를 밑돌았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대비 0.3% 하락하며 29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돼지고기 가격이 큰 폭 하락한 영향이 크지만,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한 이후 물가가 하락한 데 대해 중국 당국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막대한 부채 축소도 부담이지만,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건 디플레이션이다. 디플레이션은 중국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디플레이션의 'D'도 공개 석상에서 언급하지 못하도록 경제학자들을 입 단속하고 있다.
1990년의 일본과 비교하면 중국이 유리한 점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진국인 중국은 지금도 성장할 여지가 많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아·태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상황은 아주 비슷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차이는 중국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중동매체 알자지라에 말했다. 그는 "올해 중국이 5% 성장하더라도 (부동산 버블) 붕괴 당시의 일본 같은 마이너스 성장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시장의 예상보다 보수적인 '5% 안팎'으로 제시했다.
중국 경기 부진이 심화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를 넘어 수출·내수 전반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정부는 중국 부동산 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의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약 400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정부는 중국 부동산 위기와 더불어 미국 국채 시장 변동성 확대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한국도 적잖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4시간 가동 중인 '범정부 경제상황 합동점검반'을 통해 주요 리스크 요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상황별 대응계획을 재점검 중이다. 필요시 관계기관 공조를 통해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정부의 또 다른 걱정은 중국 경기 부진 심화에 따른 우리 수출·내수 타격 가능성이다.
중국 경제 상황은 한국 수출 실적과 직접 연결돼 있다.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7월 우리나라의 중국 대상 수출액은 전년동월대비 25.1% 줄어든 99억달러에 머물렀지만 2위 미국(92억8000만달러)보다 6억달러 이상 많았다. 지난해 연간으로 보면 중국 대상 수출액이 1558억달러로 2위 아세안(1249억달러)보다 300억달러 이상 많았다.
중국 경기 부진이 심화해 방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 우리 내수도 타격을 받는다. 최근 중국 정부가 6년여 만에 방한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 관광업계 기대가 커지고 있는데 중국 경기 부진이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및 전망' 자료에서 "단체관광 재개에 따른 중국인 관광객 증가의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제고 효과는 0.06%포인트(p)로 시산된다"면서도 "중국인 해외여행 회복세가 뚜렷함에도 중국 내수 부진, 항공편 부족 등 하방요인도 상존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인의 높은 해외여행 수요가 실제 방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유지하면서도 '중국 리스크'에 따라 1.2%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종전보다 0.1%포인트(p) 내려 잡은 2.2%로 제시했는데 하향 조정의 원인 역시 '중국'이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은 중국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볼 때 내년에도 중국 경제의 빠른 회복은 어려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중국 경제 영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날 텐데 올해는 4개월 남았기 때문에 어떤 충격이 있더라도 영향은 3분의 1"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중장기 시각에서 중국 경제 변화에 따른 대응책을 고민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 부동산 위기 여파도 보고 있지만 지난 약 20년 동안 글로벌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었던 중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더 주목하고 있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어디에서 찾느냐가 중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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