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은 이낙연 비대위원장, ‘친명’은 김두관 당대표?
계파 넘어 관심받는 김부겸·정세균…두 사람은 선 그어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으로 재판 및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곧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불체포특권에 따라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구속영장 심사를 피한 이 대표는 다시 구속영장이 날아올 경우엔 '제 발로 출석해 심사받겠다'는 입장이다. 여러 변수가 존재하지만 현재로선 이 대표가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민주당 내에선 이 대표의 유고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온다. 친명(親이재명)계 내부에서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플랜B'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인물이다. 내년 총선까지 7개월 남짓 남겨둔 가운데 이 대표가 빠진 리더십 공백을 어떤 인물로 채울 것인가다. 이 대표의 '옥중 공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으나 현실성은 크지 않다는 게 민주당 내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누군가는 이 대표를 대신해 비상대책위원장 혹은 당대표를 맡아 민주당의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구속을 피하더라도 각종 사법 리스크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조기에 스스로 물러나거나 총선 판세에 따라 당 안팎의 퇴진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민주당 내부의 수많은 눈이 몇몇 인물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물론 각 계파별로 바라보는 인물과 그리는 시나리오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친명 내부에서도 '플랜B' 언급
이 대표가 물러날 경우를 가정할 때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새롭게 전당대회를 치러 신임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다. 단, 이렇게 되려면 이 대표가 12월28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 당헌상 대표가 사퇴할 때 남은 임기가 8개월 미만인 때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대표를 선출하게 돼있다. 이게 두 번째 시나리오다. 마지막으로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다. 여기에도 전제조건이 있다. 당헌에 따르면 '당대표 및 최고위원 반수 이상이 궐위'되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 즉 이 대표는 물론 최고위원의 과반도 사퇴해야 하는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사법 문제 등 이재명 리스크를 가장 큰 당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비명(非이재명)계 내에서 현재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는 세 번째 시나리오인 비대위 구성이다. 기존 이 대표와 친명계 다수의 지도부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구성의 비대위와 위원장을 선임해 총선까지 치르는 것이다. 비대위 구성은 중앙위가 하게 돼있다. 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과 지자체장, 지도부(원내 포함), 상임 고문, 당직자, 각종 위원회 추천 인사 등 당내 다양한 위치의 800명 이하로 구성되는 중앙위는 비교적 쏠림이 없는 기구로 평가된다.
핵심은 물론 비대위원장이다. 비명계 내부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단연 이낙연 전 대표다. 그는 당내에서 이재명 대표의 가장 강력한 견제 대상이기도 하다. 친낙(親이낙연)계의 좌장 격인 설훈 민주당 의원이 최근 의원총회에서 지도부에 대한 총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제 책임도 있는 것 잘 안다. 제 못다한 책임을 다하겠다." 6월24일 미국에서 귀국하며 심상치 않은 포부를 밝히기도 했던 이 전 대표는 곧장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에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찾아가 만났다. 이재명 대표와도 만나 2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적극적으로 지방도 찾아가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귀국 직후인 6월말 첫 지방행으로 호남을 찾은 데 이어 두 달이 채 안 된 8월 중순 또다시 호남을 찾았다. 최근엔 부산을 찾아 지역 청년들에게 강연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이후로도 여러 지방을 돌며 북콘서트 및 강연 등의 행보를 이어갈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길을 잃은 것 같다' '제2의 김대중 대통령 정신이 필요하다' 등 메시지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 전 대표는 최근 종로구 모처에 사무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총선에서 종로에 다시 출마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측근들에 따르면 총선은 선택지에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해선 측근들도 부인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차기 대선이 3년도 더 남은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광폭 행보는 너무 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에선 이 전 대표가 '포스트 이재명' 체제를 대비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낙연의 이른 광폭 행보 의도는 당 장악?
이낙연 전 대표 측 사정을 잘 아는 한 민주당 중진 인사는 통화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가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전 대표는 그때를 기다리면서 정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다음 행보는 비대위원장일 수도 있고, 전당대회가 열린다면 출마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관건은 이 전 대표가 친낙계뿐 아니라 비명계 다수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느냐다. 비명계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의 가장 반대 축에 서있는 이낙연 전 대표가 리더십을 가질 경우 계파 갈등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 전 대표 측 한 인사는 시사저널에 "대부분 자의적 해석과 예상들일 뿐, 이 전 대표가 지금은 특별히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음 행보에 대한 각종 설을 일축했다.
친명계에선 이재명 체제 유지 외에는 이 대표의 12월 전 사퇴로 전당대회를 새롭게 치러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 가장 낫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표의 핵심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이 대거 포함된 권리당원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전당대회를 열 경우 친명계에 유리하단 시각이 많다. 최근 김은경 혁신위가 조기 종료하며 내놓은 혁신안에는 전당대회 투표에서 대의원 몫을 배제하고 권리당원 및 여론조사 비중을 높이는 방안이 포함돼 큰 반발에 부닥치기도 했다.
아울러 최근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던 이 대표 '10월 퇴진론'도 민주당 내 이러한 관측들을 뒷받침한다. 한 정치평론가가 주장한 10월 퇴진론은 '이 대표가 10월에 퇴진한 후 전당대회를 통해 친명계가 K 의원을 신임 대표로 민다'는 내용이다. 파장이 커지자 친명계에선 관련 내용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지만, 실제 친명계 일각에선 비대위 체제 전환은 물론 이 대표의 12월28일 이후 사퇴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현 최고위원이자 친명계로 분류되는 정청래 의원은 10월 퇴진론이 거론되기도 전인 7월말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검찰과 당 내부에서 이 대표의 임기가 8개월 남는 시점인) 12월에 이재명 대표를 마구 흔들 수 있다"며 "'초겨울 주의보'를 발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앙위에서 당대표를 뽑으면 저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발언의 취지는 '이 대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친명계 내에서 차기 지도부 구성의 권한이 중앙위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실제로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10월 퇴진론에서 거론된 K 의원은 경남지사를 지냈고, 현재는 경남 양산이 지역구인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라는 주장도 곧 나왔다. 김 의원은 "금시초문"이라며 즉각 부인했으나 실제 친명계에서 김 의원을 주목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 친명계 인사는 통화에서 "김두관 후임설이 마치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처럼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당을 수습하기에 괜찮은 리더십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며 "친명으로 분류되지만 원래는 계파색이 옅고, 내년 총선에서 PK(부산·울산·경남)가 매우 중요한 승부처가 될 거란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특정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친명계와 비명계 모두에서 관심을 받는 인사들도 있다.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다. 두 전직 총리는 풍부한 정치 경험은 물론 합리적 성향으로 현재의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내년 총선까지 당을 이끌기에 충분히 정치적 무게가 있다는 평가가 계파를 넘어 공통되게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말부터 여러 계파 인사들이 두 전 총리에게 '당을 수습해 달라'는 취지로 요청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친문 적자' 김경수 전 지사도 거명돼
그러나 두 사람은 여러 당내 역할론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김부겸 전 총리는 현재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양평에서 시골살이 중이다. 한 최측근 인사는 시사저널에 "정계를 떠났는데도 계속 이름이 흘러나오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면서 김 전 총리에 대한 비대위원장 등 역할론에 대해선 "김 전 총리는 정치 복귀 의사도 없을뿐더러 당내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들러리나 서는 자리에 갈 가능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비교적 활발한 행보를 하고 있는 정세균 전 총리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저는 역할이 끝난 머슴"이라며 역할론에 대해 일축했다.
일각에선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이름도 거론한다. 비명 중에서도 세력이 가장 큰 친문(親문재인)계 적자라고도 불리는 김 전 지사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으로 당내 갈등 수습과 리더십에 알맞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전 지사는 일명 '드루킹 사건'에 연루돼 2년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2월 사면으로 6개월의 잔여 형기를 남기고 출소했다. 복권은 되지 않아 2028년 5월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지만, 비대위원장 등 당내에서 역할을 맡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김 전 지사는 지난 8월10일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에서 방문교수로 1년간 활동하기 위해 떠나 연내 귀국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측근은 김 전 지사의 근황과 추후 계획에 대해 시사저널에 "김 전 지사는 현재 런던 도착 후 런던정경대 관계자들과 향후 학업 계획, 특강 등을 논의하며 유학 생활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 사회 협약을 통해 갈등과 양극화를 극복해 온 나라들의 경험과 현실을 두루 살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측근은 최근 야권 일각에서 나오는 김 전 지사의 총선 전 역할론에 대해선 "지금은 (김 전 지사가) 계획한 일정에 따라 공부에 집중할 때라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음에 양해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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