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현실, 책상머리에서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노동을 공부하는 사람은 현장을 알고 현장과 부딪혀야 합니다. 책상머리에서 숫자나 데이터만 다루면 노동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대안은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이달 31일 정년 퇴임을 맞는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말이다. 지난 6월16일에 이어 이달 23일, 두 차례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자신을 대학교수보다 현장 속 ‘연구활동가’로 자처했다. 그가 말하는 연구활동가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답, 즉 대안을 찾고자 애쓰며, 때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행동에도 나서는 실천적 연구자”를 뜻한다.
그래서일까. 정년퇴임을 기념해 치른 두 차례의 강연 주제도 ‘나의 노동연구: 연구활동가 30여년의 반추’였다. 첫 강연은 지난 6월 중앙대 사회학과 학생회가 마련한 ‘고별강연’이었고, 두 번째 강연은 이달 18일 한국산업노동학회가 마련한 ‘선배와의 대화’였다. 고별강연에는 150여명의 학생 및 후배 교수들이 운집했고, 선배와의 대화 시간에도 전국 20여개 대학의 석∙박사과정생 등 신진연구자 130명이 경청했다.
이 교수와 노동과의 첫 인연은 1978년 대학 신입생(서울대 사회계열) 때 우연히 학내 대자보에서 본 한 노동 사건이었다고 이 교수는 돌이켰다. 그해 2월 쟁의 중인 여성 노동조합원들에게 회사 쪽 남성조합원들이 똥물을 뿌린 ‘동일방직 사건’을 말한다. 야만적인 이 사건은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생”인 그를 사회학을 파고드는 운동권 학생으로 변모케 했다.
그가 털어놓은 1980년대 ‘노동에 얽힌 청년 이병훈의 두 일화’가 흥미롭다. 그는 1984년 대학 졸업 뒤 한국아이비엠(IBM)에 취업했다. 이 외국계 기업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던 중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데 깊숙이 관여하면서 노동운동가로 나서게 됐다. 이 교수는 “당시 무노조 경영을 내세운 회사에 맞서 난생 처음 농성과 차량시위 등을 벌이며 마침내 노동조합 승인을 쟁취했다”며 뿌듯해했다.
또 다른 일화는 노동자를 상대로 한 노동야학 활동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장이 많은 성남에서 야학을 열심히 했습니다. 한문을 가르치는 한문 교실의 교장을 했는데, 노동자 의식화의 일환이었지요.” 두 일화는 이 교수가 노동을 필생의 연구주제로 삼도록 한 동인이 됐을 것이다.
1991년 이 교수는 마침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낮에는 시스템엔지니어, 밤에는 야학의 교장 그리고 노조활동가를 겸했던 7년 6개월간의 삼중생활을 끝내고, 노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미국 동부의 명문 코넬대 노동전문대학원에서 당시로선 드물게 노사관계학 공부를 시작했다. 5년여의 유학생활 끝에 1996년 박사학위를 거머쥔 뒤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을 거쳐 2000년 중앙대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23년간 중앙대 사회학과에서 노동사회학, 사회조직론, 불안정노동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 기록을 살펴보니, 이 교수는 그동안 110건의 학술논문을 냈고, 그중 34건은 국제학술지에 실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밖에 저서와 역서 및 연구보고서를 합하니 모두 92건에 이르렀다.
이런 학술 활동에서 나타난 그의 역점 주제는 역시 노사관계였다. 박사 논문 때 다뤘던 자동차 노사관계를 비롯해 전력, 통신, 금융, 공공부문, 콜센터 등 여러 부문의 노사관계를 훑었다. 노동환경 변화, 노동시장 양극화, 비정규직 및 불안정 노동, 사회적 대화, 노동운동과 연대 등도 그가 탐구한 주요 노동 의제다.
물론 탐구에만 그치지 않고 ‘연구활동가’로서 문제 해결에 더 큰 열정을 쏟았다는 게 그의 자평이다. “학자의 현실 참여에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내 경우는 연구활동가로서 (정부의) 정책에 개입해 문제 해결을 하려 했던 측면이 더 강하고 컸습니다 ”
연구활동가로서 이 교수의 발자취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각종 단체를 통한 정책개입 활동이다. 경실련 노동위원회(2000~2005년)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2006년~2009년)에서 벌인 비정규직 관련 활동이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활동은 비정규직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시행되도록 하는 등 여러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하나는 노동운동 지원 활동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과 보건의료노조와 공무원노조 등 크고 작은 노조의 자문위원을 맡아 노동운동에 힘을 보탰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은 노동만이 아니라 노사 간의 사회적 대화와 다양한 연대로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오랜 생각이다. 그가 많은 열정을 쏟은 세 번째 활동영역은 그래서 사회적 대화와 연대 형성이다.
“노동문제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의 노동정책이 중요한데, 그런데 이 정책이 누가 그냥 선물처럼 주는 게 아닙니다. 정책이 채택되고 시행될 수 있는 토대가 사회적 대화입니다. 또 하나는 노동의 파워죠. 안으로는 노동계가 뭉치는 것이고, 밖으로는 시민사회와 연대를 넓히는 것이죠.”
30여년의 연구활동가에게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어떻게 비칠까? 이 대목에선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윤 정부의 움직임은 후진적인 한국의 노동 상황을 역주행하는 데다 추진방식도 일방적이어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노동 문제 해결은 노사 등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핵심 당사자인 노조를 적대시하고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개혁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갈등을 더 키우는 일일 뿐입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노조도 과감한 혁신, 변화가 절실합니다. 기득권이나 정파 논리를 떨쳐 버리고, 노동 약자들의 버팀대와 지킴이 역할에 더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신뢰를 얻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적극적인 연대 실천의 노력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9월 새 학기부터 더는 강단에 서지 않지만, 이 교수의 열정 어린 일상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이사장으로서 우리 사회의 상생과 연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일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난 2017년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상생과 연대를 실천하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공익법인인 공공상생연대기금 이사장을 출범 이래 줄곧 맡고 있다.
그래서 “혹 기력이 떨어지면 뭘 하고 싶냐”라고 물으니 그 답도 ‘노동’이었다. 이 교수는 “단군 시대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찾아 엮어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훑어 보는 책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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