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현장] 부천도시공사, 눈뜨고 못 볼 '집주인 갑질'...피해는 오롯이 구단과 팬의 몫으로
(베스트 일레븐=부천)
'먹거리' 없는 축구장을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지난 주말 부천종합운동장에서 현실로 펼쳐졌다. '집주인' 부천도시공사의 일방적인 요구로 인해 발생한 촌극이었다.
부천 FC 1995는 지난 26일 저녁 8시에 펼쳐진 서울 이랜드 FC와의 하나원큐 K리그2 2023 28라운드 홈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뒀다. 부천은 이날 경기에서 여름밤 무더위를 달래줄 야시장 컨셉으로, 'BFC 랄랄라 야시장'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팬들에게 색다른 먹거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부천은 "공식 후원사인 '동네방네 소사동 양조장'에서 부천 막걸리를 판매하고, 또 다른 공식 후원사 '스페이스작'에서 야시장 푸드트럭 존을 운영해 해물 부추전, 제육볶음, 두부김치 등의 먹거리를 판매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부천도시공사와 소통하며 사전 협의도 마쳤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 추진해오던 'BFC 랄랄라 야시장'은 부천도시공사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부천도시공사는 당초 막걸리를 팔더라도 술을 마시라는 권면 공지는 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천의 야시장 개최를 수락했다. 그러나 경기 하루 전인 지난 25일, 부천 구단에 갑작스럽게 연락을 취해 '막걸리 판매를 비롯해 야시장과 푸드트럭 존 운영을 전면 취소하라'며 돌연 말을 바꿨다.
민원 때문이었다. "운동장이 술집이냐, 부천 구단이 후원사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스페이스작이 경기마다 푸드트럭 장사를 하는데 특혜가 있는 것 같다. 감사를 요구하겠다"라는 내용의 민원이 발단이 된 것이다. 한 지역지도 해당 사실을 보도하면서 "특혜를 준다", "술판을 벌인다" 등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부천을 몰아붙였다.
부천은 졸지에 특정 업체에 불법적으로 특혜를 주면서 경기장 안에서 술판을 벌이는, '비도덕적'인 구단이 됐다. 그러나 모두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스페이스작은 부천 구단과 스폰서 관계를 꾸준히 이어온 업체다. 올해부터는 푸드트럭 존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부천이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 스페이스작이 정당한 계약을 통해 얻은 권리라 할 수 있다. 부천 입장에서는 매 경기 변동성이 컸던 푸드트럭 존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파트너'이기도 하다. 영업 신고 등 푸드트럭 운영을 위한 공식적인 절차도 마친 상태라 문제 될 게 없었다.
축구장 내에서 이뤄지는 주류 판매를 두고 "경기장에서 술판을 벌인다"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다. 맥주 등 주류 판매는 경기장 내에서 허용이 돼있다.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경기를 즐기는 건 K리그뿐 아니라 야구 등 프로스포츠 팬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요즘 시대에 이를 두고 '술판을 벌인다'고 보는 이가 얼마나 될지 되레 의문이다.
물론 푸드트럭에서 주류를 판매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부천 구단은 막걸리를 야외 매점에서 판매하라는 시정 요청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해당 민원이 기사화되자, 부천도시공사는 언성을 높이면서 '전면 취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안주 성격이 아닌 기존 메뉴로 모두 바꾸라'며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까지 했다. 식재료를 이미 준비해둔 상황에서 하루 전에 모든 메뉴를 바꾸라니,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요구였다.
부천은 결국 26일 홈경기에서 야시장을 비롯해 푸드트럭 존을 운영하지 못했다. 후원사 스페이스작은 준비해둔 식재료가 쓸모없게 되어 큰 손실을 떠안게 됐고, 한 달 전부터 공들여 행사를 준비했던 부천 구단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다. 부천 팬들도 경기 당일 먹거리를 즐길 공간이 없어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축구장은 이제 단순히 축구만 즐기는 곳이 아니다. 부천뿐 아니라 K리그 각 구단은 팬들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경기 당일 주류를 포함해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FC 서울의 푸드트럭이 입소문을 타고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떠오른 것처럼, 먹거리는 팬들이 축구장을 찾는 '또 하나의 동기'로 기능한다. 이제는 먹거리도 구단이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팬 서비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는데, 부천은 타의에 의해, 기본적인 팬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한 셈이 됐다.
물론 공공기관이 민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당한 민원인지, 그리고 피해는 어느 정도일지 파악하는 절차는 쏙 빠진 채 일방적으로 무리한 요구만 반복한 행태가 아쉽다.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구단과 후원사, 그리고 팬들의 몫으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언제 또다시 이런 '갑질'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부천종합운동장의 '주인'은 부천도시공사이기에,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구단은 따를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 달 9일부터 10일까지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서도 '잔디 존'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부천도시공사는 이 과정에서 부천 구단이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사전에 고지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집주인'이라 해도 세입자를 배려하는 상도덕 정도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축구판에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없다. 상도덕 없는 집주인을 만나면, 그로 인한 고통을 홀로 끙끙대며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달 넘게 준비해온 이벤트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도 하소연할 곳 없이 속앓이를 한 부천처럼 말이다.
글=유지선 기자(jisun22811@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일레븐,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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