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코로나 백신이 죽인 투구게, 대안의 시험법 나온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8. 2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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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의 시험에 투구게 혈액 희생
미국, 재조합 인공 혈액도 시험법에 추가
미국 찰스 리버 연구소의 공장에서 약품 시험에 쓸 효소 단백질을 얻기 위해 수십만마리의 대서양 투구게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투구게는 사람과 달리 피가 파랗다./TIMOTHY FADEK/REDUX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투구게(horseshoe crab)의 생존마저 위협했다. 바이러스가 투구게마저 감염시킨 게 아니다. 사람을 살릴 백신을 만들려면 시험에서 투구게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구게는 4억5000만년 동안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온 해양 절지동물이다.

제약업계가 투구게를 희생하지 않는 대안의 백신 시험법을 마련했다. 약품 시험 표준을 만드는 비정부기구인 미국 약전(USP)은 지난 22일(현지 시각) 약물 시험에서 투구게의 혈액을 대체할 합성 대체물 사용에 관한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투구게는 물론 먹이사슬로 연결된 바다새의 멸종까지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투구게 혈액성분으로 백신 독소 확인

약전은 이날 “세균성 내독소(內毒素, endotoxin) 시험에 재조합 인자 C(rFC)와 재조합 캐스케이드 시약(rCR)을 포함한 여러 시약 사용 방법이 추가 기술로 들어갔다”며 “이런 제안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방법과 재료의 사용을 확대하려는 미국 약전의 노력에 부응한다”고 밝혔다. 이번 수정안은 오는 11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재약사가 백신과 같은 의약품을 생산하려면 내독소 시험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내독소는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의 세포벽 안에 있는 물질이다. 평소엔 세균의 몸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세균이 증식하거나 죽어 세포벽이 깨지면 외부로 방출된다. 내독소는 발열 증세를 유발해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게 한다. 만약 백신에 내독소가 들어 있으면 사람을 살리려다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제약업체들은 1970년대부터 투구게의 혈액 성분으로 만든 LAL 검사로 백신이 내독소에 오염됐는지 시험했다. 투구게의 혈액 중에 척추동물의 백혈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세포가 있는데, 이것으로 만든 단백질인 LAL이 세균의 내독소와 만나면 바로 묵과 같은 겔 상태가 된다. 백신에 독소가 있는지 눈으로 바로 알 수 있다. 투구게 혈액 시험은 다른 신약 개발에도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투구게 혈액을 채취하는 미국 찰스 리버 연구소 공장에 가면 투구게들이 줄지어 있고 호스마다 파란 피가 뽑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산소를 전달하는 물질인 헤모글로빈에 철분 성분이 있어 피가 붉지만, 투구게는 구리가 있는 헤모시아닌으로 산소를 전달해 피가 파란색을 띤다. 투구게의 파란 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혈액이다. 가공한 투구게 혈액 성분은 1갤런(3.8리터) 당 3만5000~6만 달러에 판매된다. 1리터에 2000만원이 넘는다는 말이다.

대서양 해안에 몰려 있는 투구게들. 약품 시험용으로 혈액을 채취하는 투구게의 수는 2016년 40만마리 정도였지만 이후 백신 수요가 늘면서 60만마리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투구게 개체수도 급감했다./미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정부

◇인공혈액 쓰는 대안의 시험법 채택 기대

이번에 미국 약전이 추가하려는 대안의 시험법은 투구게 혈액 성분을 만드는 유전자를 미생물에 끼워 넣어 만든 재조합 단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종의 인공 투구게 혈액을 쓰는 것이다. 재조합 인자 C는 1990년대에 개발됐다. 유럽 약전은 2019년부터 제조합 인자C의 사용을 승인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인 지난 2020년 동물보호단체와 일부 제약사들이 투구게와 투구게 알을 먹고 사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재조합 단백질을 약물 시험에 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약전이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제동을 걸었다.

당시 미국 약전 측은 현재 투구게 혈액을 이용한 독성 시험은 30년 동안 자료가 축적됐지만, 대안의 새 시험법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아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 세계 150국의 제약사는 미국 약전에 맞춰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미국 약전이 3년 만에 입장을 바꿔 대안의 시험법이 전 세계로 보급될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약전의 최고 과학 책임자인 재프 베네마(Jaap Venema) 박사는 이날 “가이드라인 초안이 기업의 제품에서 위험한 세균 오염을 시함하는 방법을 바꾸기 위한 첫 번째이자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이번 수정안을 환영했다. 투구게회복연합의 공동 설립자인 생태학자 데이비드 미즈라히(David Mizrahi) 박사는 지난 25일 사이언스지에 “투구게 혈액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는 업계 표준이 없다는 것이 제약회사가 시험법을 바꾸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번 수정안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투구게 혈액을 공급해온 찰스 리버 연구소는 사이언스에 “미국 약전이 이 제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게 돼 기쁘다”면서도 “대안의 시헙법이 바이오제약업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약품 시험을 위해 투구게의 혈액을 뽑으면서 투구게 개체수가 감소하면서 그 알을 먹고 사는 붉은가슴도요 같은 바다새도 위기를 맞았다./위키미디어

◇온난화와 남획 겹쳐 멸종위기 처해

투구게는 네 차례 대멸종에서도 생존했지만, 최근 인간의 손에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투구게는 2016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위기 근접종으로 분류됐다. 의약품 생산에 혈액이 이용되면서 개체수가 급감한 것이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2016년 약 40만마리의 투구게가 혈액 채취를 위해 포획됐다. 이후 백신 수요가 늘면서 그 수는 연간 60만마리로 늘었다. 제약사들은 투구게의 심장 부근 딱지에 구멍을 뚫어 혈액의 30% 정도를 뽑아낸다. 이 정도 채혈은 투구게 생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70~95%가 채혈 뒤에도 살아남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살아남은 투구게도 5~20%가 스트레스로 오래 살지 못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피를 뽑힌 암컷 투구게는 번식력이 약해져 개체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진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미끼용 수집 등도 투구게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투구게가 감소하면서 그 알을 먹고 사는 붉은가슴도요 같은 새들도 멸종우려종이 됐다. 감염병 대유행 시대에 사람과 함께 투구게도, 새도 살릴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 자료’

USP, https://www.usp.org/news/expert-committee-proposes-chapter-for-endotoxin-testing-using-non-animal-derived-reag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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