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보다 가벼운 국방장관의 말[오늘을 생각한다]
지난 7월 30일 오후 4시경, 해병대 사령관과 수사단장이 국방부 장관을 찾아갔다.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원인 수사 보고서에는 “사단장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관할 경찰에 이관 예정임”이란 문구가 분명히 적혀 있었다. 국방부 장관은 보고를 받은 뒤 보고서에 사인했다. 같은 날 오후 6시경, 해병대 사령관이 수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날로 예정된 수사 결과 언론브리핑 자료를 국가안보실에 보내게 했다. 그리고 7월 31일 낮 12시, 용산 국방부에서 예정돼 있던 브리핑이 전격 취소된다. 이후 국방부 장관이 경찰 이첩 보류 지시를 했다는 것이 국방부의 주장이다.
사실관계만 따져보자. 일단 군사경찰이 진행한 수사 결과는 장관이나 사령관의 결재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다.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도 이들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8월 21일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원래 이첩할 때는 장관 서명을 안 받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국방부 법무관리관도 장관이 보고를 요구한 게 아니고 해병대가 알아서 보고하러 왔다고 말했다. 애초에 장관이 보고받을 필요도 없고, 결재할 일이 아니니 결과를 왈가왈부하고 이첩을 보류시킬 권한도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날 국회에서 “해병대가 보고했기 때문에 권한이 발생한 거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참 해괴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다음 날 번복할 거면서 왜 결재했냐는 물음에 장관은 “확신이 있어서 결재한 것은 아니다”란 답변을 내놨다. 대체 어느 정부 부처의 장관이 확신도 없이 공문서에 서명하는가? 만약 수사단장이 보고 후에 즉시 넘기러 갔으면 어떻게 하려고 확신 없이 결재하고 다음 날 번복을 했다는 것인가?
8월 2일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된 해병대 수사자료를 국방부검찰단이 도로 들고 온 일도 그렇다.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자료를 채 상병 사건 수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검찰단이 가져온 것은 그 자체로 위법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많다. 처음에는 기록을 ‘회수’해온 거라던 국방부는 21일 국회에선 항명죄 사건의 증거라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수사 증거로 쓰려면 압수수색을 하든지, 임의제출을 받아 압수 처리해야 절차에 맞다. 한 의원이 압수한 것이냐고 물어보자 법무관리관은 임의제출은 맞지만, 압수는 아니라며 횡설수설했다. 반면 경찰은 채 상병 사건은 군경이 협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회수에 응한 것이라며 딴소리를 한다.
매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그에 따라 국방부의 말이 시시각각 바뀐다. 누구를 위해 나라의 시스템이 이처럼 통째로 무너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난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