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대전문학의 새로운 정체성을 위해

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2023. 8.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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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대전 유역의 일상생활과 문화는 금강의 흐름을 따라 형성되고 유통되었다. 전통적으로 배산임수라는 말이 그래서 만들어졌다. 집의 뒷터에서는 산을 바탕으로 한 물자를 길러내고, 앞터에서는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데, 이를 받쳐줄 물자는 물길이 있어야 쉽게 유통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남북으로 낸 육로의 역참(驛站)도 통신 교통을 위한 중요 기관이었지만, 대량의 물자를 나르는 능력으로는 아무래도 물길이 앞섰다. 대청댐 인근의 금강 유역에 유력 가문이 모여 살고, 그에 딸린 노동력이 움직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전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세기의 근대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이다. 철도 개통은 결정적인 계기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철도가 개통하기 전에는 배를 타고 군산에 도착한 후 신탄진에 들어와 현재의 대전까지 이동했다. 대전에는 역참이 없었고, 따라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육로가 없었다. 공주와 유성 옥천에는 있었던 교통의 핵심 기관이 대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물길이 이동의 통로였다. 그랬던 금강 유역을 육로 중심의 근대적 생활권으로 만든 사건이 바로 철도개통이었던 것이다.

모두 잘 알고 있을 일을 다시 말해두는 것은, 대전의 문화예술이 형성되고 유통될 방법 하나를 제안해 보기 위해서이다. 모든 문화예술은 자신의 터전을 따라 윤곽이 잡히고 그 터전에서 소비된다. 호서와 호남, 영서와 영남이라는 유역 이름이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명칭을 정치적 지역감정으로 활용하는 이간질이 가능한 것은 바로 유역에 따른 문화적 차이가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이간질이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지역의 근간이 만들어 내는 이 차이를 소통시켜 창조적인 문화를 만드는 일도 필요한 셈이다.

이를 위한 터전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점을 먼저 말해도 되겠다. 대전은 두루 알다시피 근대 이후의 교통도시이다. 당연히 대전역에는 이와 관련된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1920년대에 대전에 살던 시인(그는 훗날 너무 조선 편이라고 총독부에 의해 추방당했던 우치노 겐지이다)은 대전역과 관련된 시를 남겨 놓기도 했고, 같은 시기에 소설가 염상섭은 그의 『만세전』에서 대전역의 인상을 묘사해 놓기도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대전이 수많은 문화인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던 이동 문화생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치를 되살리려는 정책이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리라는 생각이 필연적이라면, 이 정책이 본격적인 중부권 그랜드시티의 문화 전망으로 나아가야 하는 일도 필연적이다. 대전의 교통도시로서의 정체성이 그를 뒷받침한다.

'지역문화'라고 하면 사람들은 정체성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의 정체성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화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대전은 이동을 특징으로 하는 교통도시이다. 그런데도 하나의 정체성만 찾으려 한다면 이는 애초에 성공할 수가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동과 변화에 실린 수많은 정체성을 모아 대전의 자산으로 삼는 일이 필요한 셈이다.

대전의 문학이 금강유역문학으로 묶일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대전의 근대문학은 신채호를 제외한다면 주목받을 인물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대신 대전의 신채호와 금강을 중심으로 해서 한반도의 중부권에는 정지용, 오장환, 조명희, 신동엽, 심훈, 한용운 등의 중요한 문인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이들을 묶어 중부권 문학의 목소리로 내세우는 일은 대전이라는 도시가 가진 이동과 회합의 정체성에 매우 맞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전 문학의 정체성이 필요하다면 이들을 한데 묶어 만들어 내는 정체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전 문학의 정체성은 그 연대와 회합을 통해 계속 확장되어야 할 정체성이다.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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