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봉쇄로 식량난 최악… 민심 악화에 ‘통제 수위 조절’
‘감염병 원천 차단’ 위해 공포통치 가속
경제난 갈수록 악화… 국제사회선 고립
인적교류 통해 ‘위드 코로나’ 선언한 셈
민심 이반 관리… 장마당 활성화될 듯
항저우AG 참가… 中·러 간 교류 꾀해
사상 이완 방지 ‘기강잡기’ 가능성도
평양~베이징 노선 운항 재개 3년7개월 만에 평양∼중국 베이징 노선 운항을 재개한 북한 고려항공 여객기가 지난 22일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 도착해 있다. 2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20년 1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국경 봉쇄 이후 귀국길이 막힌 해외 체류 주민들의 귀국을 승인한다고 전했다. 베이징=AP연합뉴스 |
북한이 국경 봉쇄 해제에 나선 것은 다음달 예정된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참가 분위기 띄우기, 경제난 극복의 시급성 등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해 온 것과 달리 강도 높은 국경 폐쇄와 방역 지침들을 유지해 왔다. 가령 지난 22일 평양에서 진행한 북·러 공동 외교행사인 영화감상회에서도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국제사회 움직임과 무관하게 북한 매체들은 “신종 감염병이 언제 또 닥칠지 모른다”며 경각심을 높였다.
코로나19 발생 때부터 북한은 치료보다 예방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식 보건 사상을 명분으로 ‘원천 차단’을 강조하는 봉쇄책을 폈다. 열악한 치료 능력을 감추고 국가 책임을 회피하며 주민에 대한 공포통치만 급급했다. 2020년 제정한 비상방역법은 위반 시 처벌조항에 최고 사형까지 규정한 강력한 통제책이었고, 김정은 정권의 주민 감시와 통치에 유용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심화하는 경제난과 고립 탈피를 위해 북한이 다방면의 대외교류와 외교전을 모색 중인 만큼 기존 통제책을 더는 끌고 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경제과업 달성을 위해 입출국 문제 해소가 시급함을 반영한다”며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국경 밀무역 및 장마당 활성화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올해 식량난이 김정은 집권 기간 중 최악으로 치달은 데에는 국경 봉쇄로 장마당이 사실상 사라져가면서 북한 주민들이 식량과 생필품을 스스로 확보할 자구책조차 마비된 영향이 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육로를 통한 대규모 인적 이동을 예상했다. 그는 “중국, 러시아에서 기존 외화벌이 노동자 파견을 통한 수입원을 유지하기 위해 신규인력 파견 조치가 병행될 것”이라며 “최근 북·중 접경지역 식당들에서는 북한 종업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오는 9월 아시안게임에 앞서 분위기를 띄우고 향후 국제무대에서 공세적 활동을 펴기에 앞선 사전조치 성격도 있어 보인다. 양 교수는 “아시안게임 참여를 통한 비정치 분야 대외활동이 강화될 것”이라며 “판문점에서 월북한 (주한미군 소속) 트래비스 킹 이병 사건을 중심으로 북·미 대면접촉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이번 조치로 북한 당국은 민심 이반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한편 북·중, 북·러 인적교류를 활성화하며 북·중·러 경제 블록화를 꾀할 가능성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냉전 기류로 인한 북·중·러의 밀착은 북한으로서는 대북제재를 무용화할 호재다.
◆“통제책 보완용 기강 잡기 거세질 것”
다만 북한 당국은 국경 개방에 따른 동요와 통제 이완을 막기 위해 당분간 다른 방식의 통제책을 보완할 가능성이 크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최근 김덕훈 내각총리를 질타하며 히스테리를 일으킨 것도 예정된 국경 개방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며 “당과 내각, 군부를 발칵 뒤집고 평양시민들을 대거 지방으로 소개하며 한바탕 난리를 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 기간 급속히 발전한 디지털 통제책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인권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경우 서방과 달리 전방위적 데이터 수집을 통해 인공지능(AI)의 안면인식 기술을 고도화시켜 재중 탈북민 체포에 활용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해 왔다.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중국 안에서 폐쇄회로(CC)TV나 AI 등을 통한 조사가 강화됐기 때문에 북·중 국경 통제가 굉장히 체계적으로 되고 있다”며 “기술적 통제수단이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북한도 그러한 기술을 받아들여 CCTV 설치나 기술적 감시장치가 늘어날 수 있다”며 “북한 내부 통치 차원에 있어서도 중국의 기술 발달, 북·중 협력체제 강화의 덕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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