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매년 3천억원 이상 콘텐츠 투자... ‘영드’도 BBC 핵심 콘텐츠

이용성 기자 2023. 8.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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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신드롬으로 英·유럽서 K드라마 관심↑
韓 창의적 에너지 넘쳐... 팩추얼 콘텐츠 협력 모색
교육용 커리큘럼을 개발도 중요 전략
첨단 기술 접목, 제작진 역량 강화에 끊임 없이 투자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 기간 동안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으로 영어권 국가에서도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제작된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 편해졌다. 여기에 ‘오징어게임’의 전 세계적인 인기로 영국과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필 하드만 BBC 스튜디오 아시아 총괄이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국제영상방송마켓(BCWW) 행사 도중 BBC 스튜디오 부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용성 기자

필 하드만 BBC 스튜디오 아시아 총괄은 영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위상에 관해 묻는 기자의 질에 이렇게 답했다. BBC 스튜디오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영상 콘텐츠 제작·배포를 총괄하는 산하 기관이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20개 시장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하드먼 총괄이 속한 아시아 본부는 싱가포르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뉴스와 다큐멘터리 외에 ‘닥터후’와 ‘셜록’ 등 국내에도 팬층이 두꺼운 인기 영드(영국 드라마),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애니메이션 ‘블루이(BBC 스튜디오와 호주 ABC 방송 공동 제작)에 이르기까지 담당 콘텐츠의 폭이 무척 넓다. ‘닥터후’는 BBC가 1963년부터 방영돼 올해 출시 60주년을 맞은 영국 대표 SF 드라마다. 타디스라는 이름의 우주선 겸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돌아다니는 ‘닥터’가 외계인들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셜록’은 소설 ‘셜록 홈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다.

영국 카디프대에서 회계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하드만 총괄은 2014년부터 BBC의 회계와 전략 파트 등에서 근무했고, 2014년 BBC 스튜디오(당시 이름은 BBC 월드와이드)의 아시아 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중화권 사업 총괄, 아시아 전략 담당 임원 등을 거쳐 2021년 4월부터 아시아 총괄을 맡아왔다.

얼마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국제영상방송마켓(BCWW)’에 참석차 방한한 하드만 총괄을 독점 인터뷰했다. BCWW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아시아 최대 방송영상콘텐츠 교류·판매의 장이다. 2001년 첫 행사 이래 매년 꾸준히 성장해 20년 넘게 K콘텐츠 수출을 견인해 왔다.

─BBC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BCWW 행사에 참가를 결심한 이유는.

“한국에서 BBC를 언론사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뉴스가 BBC의 핵심 콘텐츠인건 맞지만 BBC의 콘텐츠는 그보다 광범위하다는 걸 알리려고 왔다. 한국에 사무소가 있고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

─이번 행사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나.

“한국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한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드라마 인기가 엄청난 싱가포르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콘텐츠 제작사와 배급사 부스에 전시된 작품의 상당부분이 익숙했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의 콘텐츠 기업들도 다수 참가해 명실상부한 국제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명의 BBC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TV조선 드라마 ‘엉클(Uncle)’과 BBC 드라마 ‘루터(Luther)’를 원작으로 한 MBC ‘나쁜 형사’ 등 BBC 스튜디오와 한국 콘텐츠 제작사 간 협력은 꾸준히 있었다.

“한국의 드라마 시장의 자생력이 매우 강해서 해외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운좋게도 몇몇 성공적인 BBC 드라마 리메이크 작품이 있긴 했다. 반대로 우리가 한국 콘텐츠 포맷을 수입한 경우도 있다. 엠넷의 음악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너목보)’의 글로벌 포맷 ‘I Can See Your Voice’는 BBC One에서 시즌2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다.”

2015년 엠넷에 첫 방영된 ‘너목보’는 직업과 나이, 노래 실력을 숨긴 미스터리 싱어 그룹에서 얼굴과 몇 가지 단서만으로 실력자인지 음치인지 가리는 음악 추리쇼 프로그램이다. 영국 BBC 외에도 미국(Fox)과 독일, 프랑스, 태국, 이스라엘 등 총 28개국에 판매 및 리메이크돼 대표적인 K-포맷으로 자리잡았다. BBC One을 통해 방영된 영국판 ‘너목보’ 시즌2는 첫 화부터 타깃 시청률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고, 3화에서 최고 시청률을 달성, 영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예능 ‘더 보이스’ 최종화를 제치고 동시간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 콘텐츠 기업과 새로 협력을 모색 중인 분야가 있는지.

“BBC 스튜디오가 강점을 가진 분야 중 하나는 다큐멘터리와 과학, 역사 등을 아우르는 팩추얼(factual) 콘텐츠다. 이 분야에서 한국 콘텐츠 기업과 공동 제작에 관심을 갖고 협의도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와 인도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에는 BBC 콘텐츠 전용 ‘BBC 플레이어’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 서비스 계획은 없나.

“한국 진출도 좋은 사업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미 KT, SKT LG 유플러스와 (IPTV를 통한) 좋은 파트너십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파트너십 형태로 서비스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논의는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양대 통신기업인 싱텔, 스타허브와 파트너십을 통해 서비스 중이다. 인도에서는 아마존 프라임비디오채널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를 개시하려면 한국 시장에 적합한 콘텐츠 조합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상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나.

“스트리밍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또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 여전히 엄청난 수의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다. 수준 높은 작품도 있고 형편없는 것들도 있다. 우리 같은 제작사의 역할은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고, 즐겁게 만드는 우리의 임무는 변함이 없다. 팬데믹으로 영화관에는 타격이 있었지만, 오펜하이머’와 ‘바비’의 경우에서 보듯 TV와 모바일 기기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영화관 만의 영역이 여전히 있다. 최근에 극장에서 두 작품을 봤는데 매우 독창적이고 멋졌다.”

─과거 ‘프렌즈’를 비롯한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는 국내에서 영어 공부를 위한 교재로도 많이 쓰였다. BBC의 영드로도 비슷한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유튜브 온라인에 BBC 영어교육 콘텐츠가 있긴 하다. 단순히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교육용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 중 하나다. BBC의 영드를 활용하면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영국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미국과는 다른 ‘영국스러움(Britishness)’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야기 전개나 인물 설정 등에서 사실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물론 과장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도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등 사회상을 충실히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식 유머는 미묘하고 건조하며 비꼬는 듯한 스타일이 두드러진다.”

─BBC의 자연 다큐멘터리는 완성도가 높기로 정평이 나있다. 비결이 뭔가.

“높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제작진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심히 한다. 물론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매년 2억 파운드(약 3340억원) 넘게 콘텐츠에 투자한다. 이 같은 투자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최신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한다. 팩추얼 콘텐츠에 처음 드론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우리다. 이를테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치타나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통차를 일정한 속도로 카메라가 따라가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이전에 포착하지 못한 걸 포착하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동물들의 행동을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작진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많은 공을 들인다. 그 결과로 우리가 얻는 건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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