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볶으니 향기롭고 구우니 단단하다
350도서 구워 모래처럼 섞으면
종전보다 압축강도 29.3% 껑충
매립할 때보다 메탄 배출 줄고
모래 덜 써 자연경관 보존 도움
고용 창출 등 부가 효과도 기대
#일곱 살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인 샘(숀 펜)은 커피전문점 직원이다. 그는 손님의 주문을 받고, 매장에 놓인 설탕 봉지와 빨대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샘에게 커피전문점 일은 직업 이상의 의미다. 자신을 사회와 연결하는 고리다. 그래서인지 일도 무척 열심히 한다.
그런 샘에게 매장 상급자가 어느 날 다가와 “샘, 전화 왔어요, 갈 시간이에요”라고 말한다. 샘은 안절부절못한다. 전화가 온 곳은 자신의 딸이 곧 태어날 병원이었다. 근무용 앞치마도 벗지 못한 채 서둘러 달려간 샘은 방금 세상으로 나온 딸 루시(다코타 패닝)를 품에 꼭 안는다.
샘은 이웃과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서툴지만, 사랑을 담뿍 담은 육아를 시작한다. 그리고 딸 앞에 당당한, 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2002년 개봉한 미국 영화 <아이 엠 샘>의 줄거리다. 샘은 손님에게 커피 주문을 받은 뒤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는 밝은 목소리로 “탁월한 선택입니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러면 손님들도 웃는 얼굴로 샘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샘이 커피전문점에서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우호적인 감정을 나누는 건 커피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주는 먹거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커피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최근 등장했다.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커피 찌꺼기를 불에 구웠다. 그리고 모래 대신 콘크리트에 섞었다. 그랬더니 콘크리트 강도가 껑충 뛰었다. 이 기술이 보급되면 땅속에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커피 찌꺼기가 썩으며 나오는 온실가스도 감축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이 함께 열린다는 뜻이다.
커피 찌꺼기 섞으니 강도 ‘껑충’
호주 RMIT대 연구진은 최근 구운 커피 찌꺼기를 배합해 콘크리트 강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클리너 프로덕션’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사용한 기술의 핵심은 커피 찌꺼기를 350도에서 굽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커피 찌꺼기를 기초로 한 ‘바이오차(Biochar)’라는 물질이 생성된다.
바이오차는 특정 공간에 식물이나 동물 배설물 같은 유기물을 뜻하는 ‘바이오매스’를 넣고 저산소 환경에서 연소시켜 만든 물질을 통칭한다. 농토에 뿌리면 토양 산성화가 방지되고, 양분도 유지된다.
연구진은 구운 커피 찌꺼기를 콘크리트에 들어갈 모래 대신 섞었다. 모래를 대체한 비율은 15%였다. 모래 100㎏을 섞어야 하는데, 15㎏을 커피 찌꺼기로 대신했다는 뜻이다. 건물이나 교량 등을 지을 때 사용하는 콘크리트는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을 배합한 뒤 물을 부어 만든다. 모래 역할 일부를 구운 커피 찌꺼기에 맡긴 셈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구운 커피 찌꺼기를 배합한 콘크리트의 압축 강도가 보통 콘크리트보다 29.3%나 높아졌다. 짓누르는 힘에 버티는 능력이 껑충 뛰었다는 뜻이다. 이는 구운 커피 찌꺼기에 콘크리트의 주원료인 시멘트가 흡수되면서 나타난 일이었다. 연구진 분석 결과, 구운 커피 찌꺼기 입자에는 열 때문에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뚫렸다. 이 구멍을 시멘트가 꽉 채우면서 압축 강도가 크게 올라갔다.
메탄 줄이고 자연 환경도 지켜
연구진의 기술은 기후변화 억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공식 발표자료를 통해 “커피 찌꺼기 같은 유기물 성격의 폐기물은 땅에 매립돼 분해되는 과정에서 메탄을 배출한다”며 “커피 찌꺼기 재활용은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 능력이 20배나 강한 기체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커피 찌꺼기는 연간 1000만t가량으로 추산된다. 지금은 이런 커피 찌꺼기 대부분이 쓰레기 매립장으로 간다. 이번 기술로 메탄 방출을 줄일 방법이 생긴 셈이다.
구운 커피 찌꺼기를 모래 대신 쓰면 자연 파괴도 줄일 수 있다. 지금은 모래를 얻으려면 강바닥을 파헤쳐야 한다. 연구진은 “건설산업 수요로 인해 전 세계에서 연간 500억t의 모래가 사용된다”며 “이번 기술을 통해 모래와 같은 천연자원을 더 잘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상용화한다면 유기물 쓰레기를 가치 있는 자원으로 만드는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고용이 창출되고 국가 경제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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