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금융에 '멀티플레이'를 許하라

노희영 기자 2023. 8. 28.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희영 금융부장
당국의 비이자 이익 확대 강조에도
금산분리·인허가 규제 걸림돌 여전
'지주법' 개정해 비금융 투자 길 열고
금융사도 리스크·내부 통제 강화를
[서울경제]

윤석열 대통령이 올 2월 ‘은행 돈 잔치’를 비판하고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를 지적했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의 경쟁 시스템 강화를 위해 비이자이익 확대를 강조했다. 금융회사들은 이에 대해 한편으로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동안 금융회사들의 비이자이익 확대에 걸림돌이 됐던 각종 규제를 금융 당국이 풀어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회사들은 비이자이익을 확대해보려 해도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나 금융업 관련 인허가 규제 등에 가로막혀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곧바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금융권·학계 등과 함께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하지만 4개월 동안 열다섯 차례 회의를 연 후 지난달 내놓은 종합 개선안에서는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허용 정도가 눈에 띄었을 뿐 이렇다 할 결과물은 보이지 않았다. TF에 참여했던 카드·증권·보험 등 비은행 업권에서 지급결제업 허용을 요청했으나 시스템 안전성 문제가 크다는 이유로 개선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은행권에서는 이자이익에 편중된 수익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투자일임업 도입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이 역시 제외됐다. 당초 관심을 모았던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이나 스몰라이선스(인가 세분화) 등도 개선안에서 빠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계기로 특화은행들의 부실 우려가 커졌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차일피일 미뤄지던 금산분리 완화 방안 발표도 재차 연기됐다. 금융 당국은 이달 말 예정된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추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실물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더딘 상황에서 금산분리 완화로 금융회사가 비금융 영역으로 무분별하게 진출할 경우 골목상권이 침해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영향을 더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당국이 금융 산업 육성, 금융회사의 해외 경쟁력 강화 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에는 소극적이라며 답답해 하고 있다. 이달 초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CEO들은 정부가 비이자이익 확대를 주문하면서도 이를 위한 토대 마련에는 적극적이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자 장사를 하지 말라’는 정부가 되레 금융회사들이 이자 장사밖에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연내에 금융지주회사법 개정 등 금산분리 완화 방안이라도 발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가 아닌 회사 지분을 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 시대가 도래하고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접목이 필요해졌지만 규제로 인해 금융회사들은 새로운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이에 금융지주회사들은 은행이나 보험에 허용된 15% 수준까지 투자 범위를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핀테크 등 신산업 투자를 늘릴 수 있고 전략적 제휴를 통한 수익원 다각화로 금융의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진다. 일일이 혁신금융 서비스를 신청해 심사를 받아야 했던 금융과 비금융 융·복합 상품 및 서비스도 쉽게 선보일 수 있게 된다.

물론 규제 완화에 발맞춰 혁신적인 서비스로 금융소비자의 편의를 높일 수 있도록 금융회사들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 및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를 통한 신뢰 제고도 필요하다.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미뤄지고 있는 데는 최근 국민은행과 경남은행·대구은행 등에서 횡령, 내부자 정보 이용, 불법 계좌 개설 등 대형 금융 사고가 잇따른 영향도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동양그룹이 자회사 동양증권을 통해 계열사의 회사채·기업어음(CP)을 불완전판매해 4만여 명의 개인투자자들에게 1조 5000억 원의 피해를 입힌 이른바 동양그룹 사태로 금산분리 강화 목소리가 커졌던 상황이 재연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노희영 기자 nevermind@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