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범죄자 상대하며 소송까지”…‘무용지물’ 면책 규정 손본다

박기주 2023. 8. 28.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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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상대하면서 소송당하고, 수천만원씩 물어주는 게 정상인 나라인가요."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면책 규정이 현장 경찰관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다 보니 제복을 입었을 뿐 일반 시민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해도 그걸 현장에서 믿을 수 있겠느냐"며 "현재 꼼꼼하고 복잡하게 돼 있는 면책 규정을 개정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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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찰관들 물리력 행사에 부담감 호소
고의 중과실 삭제하고, 대상 범죄도 확대
경찰 공권력 강화 우려도 제기될 듯

[이데일리 박기주 이상원 기자] “범죄자 상대하면서 소송당하고, 수천만원씩 물어주는 게 정상인 나라인가요.”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경찰이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쏟아낸 한 경찰관의 푸념이다. 실제 경찰청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0~2022년 직무수행 과정에서 고소를 당해 소송비용을 지원받은 공무원 중 경찰의 비중은 55.6%(395건)로 1위다. 경찰 직무 집행 관련 면책 규정에 대해 신설 1년 반 만에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과도한 조건으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조항의 취지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인근에서 경찰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국민의힘과 경찰이 추진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은 면책 조건을 대거 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당정은 앞서 지난 22일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를 열고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공감한 바 있다.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면책 규정이 있지만 굉장히 한정적이고 고의 중과실에 한해서 한다. 법 개정이 수반돼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직무 수행을 인한 형의 감면’(제11조의 5) 내용이 담긴 조항에서 ‘해당 경찰관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때’라는 문구를 삭제한다. 고의 여부, 중대한 과실 여부 등 객관적이지 않은 판단 요소가 적용되고 있어 경찰들이 현장에서 대응하는 과정에 제약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면책 조항이 적용되기 위한 범죄의 범위도 확대된다. 현행 법에 따르면 경찰은 형법상 살인·상해 및 폭행·강간·강도, 가정폭력범죄나 아동학대범죄 등이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을 때 진압을 위해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형의 감면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고 범죄의 행태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정 범죄로만 한정 짓는 것은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반영,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한 경찰에 대한 벌칙 규정에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만 명시돼 있는데, 벌금형까지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을 경우 경찰관은 사실상 퇴직 수순을 밟게 되는데, 아무리 경미한 위반 사항이라도 금고보다 낮은 처벌이 없다 보니 경찰들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밖에 불심 검문 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규정에 ‘경찰관 정복을 입고 있을 경우’는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전문가들 역시 면책 요건에 대한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면책 규정이 현장 경찰관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다 보니 제복을 입었을 뿐 일반 시민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해도 그걸 현장에서 믿을 수 있겠느냐”며 “현재 꼼꼼하고 복잡하게 돼 있는 면책 규정을 개정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경찰의 면책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할 경우 경찰 권력이 과도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면책 규정이 신설될 당시에도 공권력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권 침해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의 상황을) 경찰 공권력 확대 기회로 이용하면 안 된다. 법안이 발의되면 (행안위) 소위원회에서 타협의 과정을 거치고, 이번 정기국회 내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기주 (kjpark85@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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