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욕도 못 하겠네"…블라인드 '경찰 사칭男' 잡히자 술렁

양윤우 기자 2023. 8. 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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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인 척 칼부림 글 올린 30대 회사원, 하루만에 체포
이용자 신뢰성 의심…블라인드 "어떤 정보도 저장 안 해"
계정 매매 논란엔 '비정상 이용 차단·민형사 소송' 방침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익명 커뮤니티에서 경찰청 직원을 사칭해 살인 예고를 올렸다 체포된 30대 회사원 A씨가 구속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24일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3.08.24.


직장인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경찰을 사칭해 살인 예고 글을 올린 남성이 범행 하루 만에 체포되면서 블라인드 이용자들이 술렁인다. 익명성을 내세워 올해 기준 가입자 수 800만명을 돌파한 블라인드 시스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블라인드는 시스템상 이용자 정보를 제공할 수도, 제공한 적도 없다는 입장이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30대 회사원 A씨는 지난 21일 오전 블라인드 게시판에 경찰 직원 계정으로 '오늘 저녁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칼부림한다'는 게시물을 올린 혐의로 다음날인 22일 오전 서울 시내 주거지 인근에서 긴급 체포됐다. 서울동부지법 신현일 부장판사는 지난 24일 A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사이버수사대가 A씨의 글이 게시된지 하루만에 A씨를 특정해 체포한 것을 두고 블라인드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익명성을 보장한다더니 색출 가능한 것이냐'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이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A씨를 특정할 수 있었던 방법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면서 블라인드 이용자들의 불만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블라인드 이용자 20대 남성 우모씨는 "앞으로는 블라인드에서 솔직한 발언과 의견 표출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하루 만에 체포된 걸 보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게 맞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블라인드는 그동안 회원 가입시 회사 이메일 계정 인증 절차를 거치지만 해당 정보를 공개되지 않는 복합변수로 암호화해 안전하게 보관한다고 홍보해왔다. 또 관리자조차 가입 당시의 이메일을 암호화하기 전으로 되돌려 확인할 수 없고 암호화된 이메일과 계정 정보는 분리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기 때문에 계정 정보로는 이메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블라인드는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의 수사협조 요청에 시스템상 응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블라인드 관계자는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미 밝힌대로 내부에 어떤 가입자 정보도 저장하지 않고 있다"며 "A씨 사건과 관련해서도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고 (시스템상 정보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공식 답변을 전달하기 전에 이미 A씨가 검거됐다"고 말했다.

A씨가 지난 21일 블라인드에 경찰을 사칭하며 올린 살인예고글. /사진=블라인드 캡처


일각에서 A씨가 과거에 "누드 사진 찍어줄 누나 있을까"라며 오픈채팅 주소를 넣은 글을 게시하는 등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겨 체포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과거 비슷한 사건을 보면 2021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직후 LH 직원 계정으로 "꼬우면 이직하든가"라는 글을 게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을 때 경찰은 미국 블라인드 본사에 압수수색 영장까지 보냈지만 게시자를 특정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같은 사건에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반대시위 하나도 안 들림. 개꿀"이라는 메시지를 올린 직원은 LH 내부 감사에서 확인됐다.

한편 A씨가 경찰을 사칭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일부 중고 거래 사이트나 오픈채팅방에서 이뤄지는 블라인드 계정 매매에 대한 논란도 다시 고개를 든다. 의사 등 전문직이나 대기업 직원의 계정은 고액에 거래되는 데다 퇴직자도 계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이런 거래가 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 역시 경찰관으로 근무한 적이 없고 가족 중에도 전·현직 경찰 직원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블라인드는 이와 관련, 정기적으로 비정상 이용자를 모니터링해 해당 계정을 영구 차단 조치한다고 밝혔다. 계정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해서도 거래자의 신상을 확보해 민·형사상 소송과 고소를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가입 인증에 필요한 경찰청 직원 이메일 취득 경위를 두고 지인의 계정을 빌린 것인지, 구매한 것인지, 비정상적인 경로로 우회 가입한 것인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만일 현직 경찰관이 자신의 계정을 판매한 것이라면 내부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은 A씨가 경찰청으로 직장이 표시될 줄 알면서도 살인예고 글을 올린 데 대해 형법상 공무원자격사칭이나 경범죄처벌법상 공무원사칭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 중이다.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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