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시스템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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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방의 병원에서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의사를 구하지 못한 일이 기사화됐다.
보수가 꽤 높았음에도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만큼 모든 일이 평균의 주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빈번한 극단적인 사태의 발생으로 나타난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인구가 과밀하게 되면 경쟁이 심화해 과도한 집값 상승과 사교육시장 형성 등이 이뤄지고 이를 타깃으로 또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양의 피드백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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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확충 반복으로 과밀화
교육·부동산 등에서 격차 낳아
‘안정적인 이득추구’ 의식 팽배
각종 사회시스템 위기 이어져
분산·분권화 통해 붕괴 막아야
얼마 전 한 지방의 병원에서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의사를 구하지 못한 일이 기사화됐다. 보수가 꽤 높았음에도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녀 교육과 부동산 문제까지 고려하면 수긍이 간다. 지방에 내려가면 자녀 교육이나 부동산 등에 있어서 수도권·대도시에 비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병원·문화 인프라 등 여타 생활 편의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의사의 수급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처럼 거처를 정하는 문제는 직업 이상으로 매우 복합적이다. 어쩌면 직업 이외의 문제가 우리 삶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토가 고르게 발전해 어느 곳에 살더라도 큰 차이가 없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상황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며 여기저기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선택에 따른 편차와 불확실성이 높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살기가 쉽지 않다. 순간의 선택이 엄청난 격차를 벌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모든 일이 평균의 주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빈번한 극단적인 사태의 발생으로 나타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임계점에 이르면 시스템이 붕괴하고 만다.
과거에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장·사업을 목적으로 이동한 결과로 나타났지만, 이제는 수도권 거주 자체가 하나의 목적으로 변질됐다. 교육과 직장을 이유로 서울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많아지면 혼잡도가 높아진다. 그러면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확충되고 대규모 신도시가 형성돼 생활이 편해지면 또다시 사람들이 모인다. 다시 인프라를 확충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수도권은 점점 과밀화됐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인구가 과밀하게 되면 경쟁이 심화해 과도한 집값 상승과 사교육시장 형성 등이 이뤄지고 이를 타깃으로 또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양의 피드백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지속되면서 수도권이라는 지역 자체가 선택의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군림한다.
교육·직장·의료·주택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서 수도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확장되고 있다. 얼마 전 쟁점이 된 수능 킬러문항과 결부된 사교육시장의 비대화도 수도권 집중이 낳은 비정상적인 교육 행태로 간주할 수 있다. 또 지방 의료서비스의 붕괴를 비롯한 의료체계 문제도 시장 원리를 외면한 의료수가에 더해 수도권 병원에 대한 과도한 수요가 원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은 수도권 과밀화가 주범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이미 수도권으로 향한 전 국토의 에너지는 그 임계점을 넘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어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가히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조선시대 양반 중심의 신분제도와 선비(士) 중심의 문치주의가 합작해 만들어낸 양반 문치 카르텔은 작금의 학벌·부동산 중심의 수도권 과밀 현상과 묘하게 겹친다. 양반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된 관행이 지속돼 조선 후기에는 양반수가 인구의 절반 가까이 이르렀다. 수도권 대학 진학과 부동산값 급등에 의한 부의 기회가 결합해 현재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산다. 공통점은 쉽고 안정적으로 이득을 누리겠다는 지대 추구 행위이다.
거대한 인구 집중이 자아내는 과잉은 극단을 불러오고 극단은 격차를 낳는다. 과도한 격차는 ‘오직 고지 점령과 유지’라는 지대 추구 의식을 심기에 충분하다. 강력한 국토의 분산화·분권화와 더불어 가치를 다원화하지 않고서는 시스템은 위험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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