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권 바뀔 때마다 역사 줄 세우기, 언제까지 반복되나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생도 교육 건물 중앙 현관에 설치된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교내 다른 장소나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 이 흉상은 독립군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1절에 우리 장병들이 사용한 실탄 탄피 5만개(300kg)를 녹여 제작됐다. 국방부는 국난 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가 있고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의 흉상이 육사에 있으면 되겠느냐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봉오동 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전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은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독립군과 광복군은 국군의 뿌리인데 국방부가 합당한 이유 없이 흉상 철거·이전을 시도하는 것은 민족 정기를 들어내려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5인은 독립군과 광복군을 이끌며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고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운영했다.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고 모스크바 국제공산당 대회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련 치하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고 1937년엔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박정희 정부 때 건국훈장을 추서받았고 2021년 유해가 봉환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북한과 아무 관련이 없고 반국가적 활동을 한 적도 없는 홍 장군의 공산당 가입 경력만 문제 삼는 것은 이념적이고 편협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사의 이번 방침을 문재인 정부 지우기로 보는 시각도 있고, 문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광복군을 우리 군의 출발점으로 제대로 교육하라”고 했고 신흥무관학교를 부각시켰다. 이듬해 5인 흉상이 제작돼 육사에 설치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문 정권은 광복군·독립군 출신에게 명예 육사 졸업장을 수여하고 신흥무관학교 107주년 기념식을 육사에서 열었다. 반면 육사 교정에 있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휘호석은 철거해 인근 야산으로 옮기고 육사 홈페이지에서 백선엽 장군 웹툰을 삭제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입맛에 따라 역사를 줄 세우는 시도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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