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종교·정치성향 기반 ‘표적 광고’ 금지… 위반땐 매출 6% 벌금
유럽연합(EU)이 빅테크의 핵심 수입원인 ‘맞춤형 추천’을 제한하는 법안을 본격 시행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기관처럼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시대가 열렸다. 애플, 구글, 메타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지금까지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할 정도로 규제 없는 성장을 거듭해왔다. 독점적인 영향력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사용자 보호와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25일(현지 시각) 유럽연합은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정식 시행했다. 지난해 7월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약 1년 만이다. 이 법안은 빅테크 기업이 민감한 개인 정보를 활용해 이용자에게 맞춤형 광고 및 게시물을 노출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럽 각국 정부가 빅테크의 맞춤형 광고가 사용자들의 개인 정보를 정당한 대가 없이 돈벌이에 활용되고 있는 데다,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혐오와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빅테크들은 핵심 경쟁력인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규제에 맞춰 전면 수정해야 한다.
테크 업계에선 구글·메타 등이 매출의 80~90%를 광고에 의존하는 만큼, DSA의 시행이 빅테크 산업을 뿌리채 흔드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테크 기업의 핵심 ‘맞춤형 콘텐츠’에 철퇴
25일 시행된 DSA 적용 대상은 역내에서 월간 사용자 수 4500만명 이상을 거느리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다. 애플, 아마존, 링크드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등 미국계 서비스는 물론, 틱톡과 알리바바 등 중국계 인기 서비스와 독일 온라인 쇼핑 업체 잘란도 등 19개 서비스가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빅테크는 사용자의 연령, 성별, 거주 지역과 같은 정보와 최근 어떤 콘텐츠를 검색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노출시킨다. 예컨대 20대 여성이 ‘아이라이너’를 검색하면 온갖 플랫폼에서 화장품 광고가 쏟아지듯, 광고의 적합성을 높여 구매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제품이 아닌 특정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맞춤형’으로 제공되면, 이용자의 편향성이 고착화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DSA는 개인의 종교, 민족, 성적 지향, 정치 성향 등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광고를 금지했다. 유색인종 혐오 콘텐츠를 즐기는 이용자에게 이런 성향을 기반으로 백인 우월주의 메시지를 담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을 막는 식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으로는 어떤 종류의 맞춤형 광고도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DSA는 빅테크들에 이용자들이 개인 정보 수집 중단 및 추천 알고리즘 비활성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할 것을 의무화했다. 추천 없이 게시물을 단순한 시간순으로 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또 차별·편파 발언, 테러, 아동 성학대 등이 포함된 유해 콘텐트가 유통됐을 때 신속하게 제거해야 하며 규제 기관이 빅테크에 이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허위 정보가 확산하는 걸 막기 위한 자체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법 조항을 어기면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지난해 1166억달러(약 155조원)의 매출을 올린 메타는 9조원이 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DSA를 반복적으로 어기면 EU 역내에서 서비스가 완전히 퇴출될 수도 있다.
◇대비책 마련 분주한 빅테크
빅테크들은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메타는 지난 6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추천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발표했고, 유럽 사용자에 한해서 인공지능(AI)이 자동으로 추천하는 콘텐츠 기능을 끌 수 있도록 했다. 틱톡 역시 지난 4일 유럽에서 ‘사용자 맞춤 기능’을 비활성화시켰다. 맞춤형 콘텐츠를 우선 노출하지 않고 이용자의 거주지 및 전 세계 인기 동영상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현재 아마존과 메타 등은 EU 규제에 대응책을 마련하는 인력만 수천 명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크 업계에서는 유럽이 2018년 개인 정보 보호법을 제정한 후 전 세계에서 비슷한 법안이 속속 마련됐듯이, 디지털서비스법도 전 세계로 확산할 것으로 본다. 투자은행 출신의 브라이언 위저 기술 애널리스트는 1933년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했던 글래스 스티걸법을 언급하면서 “지금은 빅테크의 글래스-스티걸 순간”이라며 “사실상 거의 규제가 없던 환경에서 강력한 규제의 세계로 가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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