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지역 폄하 거둬라

손균근 기자 2023. 8.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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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참사’ 원인 지방 폄하…공간 차이 차별 근거 안돼
해인사 장경 서울 있어도 판각지 남해 무시 했겠나

중세 왕은 절대적 권력자였다. 권한의 크기에 버금가는 책임도 져야 했다. 가뭄이나 홍수의 책임을 왕이 져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태종은 만년에 극심한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전국 각지를 돌며 기우제를 지냈다. 비는 그가 죽은 음력 5월 10일에야 내렸다. 이를 ‘태종우(太宗雨)’라 부른다. 태종은 조선 왕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철권을 휘둘렀다. 그도 자연재해를 ‘부덕의 소치’로 자책했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법률의 절차에 따라 권한을 위임받는다. 행정부만 본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법률과 제도에 따라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행정·재정권한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행정권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6.5대 3.5 정도이다. 재정권은 7.5대 2.5쯤 된다. 지난 정부에서 자치행정권과 자치재정권의 비율을 분석한 결과치다.

권한과 책임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런데 최근 일어난 몇 개의 사례를 보면 ‘권한 따로, 책임 따로’를 실감한다. 나아가 지독한 ‘지방 폄하’가 일상적 사고로 굳어지는 현상도 목도한다. 지난달 오송 지하차도 참사만 보더라도 그렇다. 충북도의 책임이 가볍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사고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수록 제방관리를 허술하게 한 행정중심도시건설청(행복청)의 1차 책임이 두드러진다. 행복청은 중앙정부 기관이다. 그런데도 참사 초기나 상당시간이 지난 뒤에도 중앙정부·언론은 충북도의 책임을 강조한다. 행복청의 잘못된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비판은 ‘가뭄에 콩나 듯’하다. 4대 강 사업에 이어 지류·지천 정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뒤집어 엎고 관련 예산을 자른 것은 충북도가 아니라 중앙정부와 정치권이다.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한 새만금 잼버리 사태도 마찬가지다. 초기부터 중앙부처와 언론은 전북도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 중에 압권은 일부 중앙언론이 “다시는 지방에 국가적 행사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일각의 주장을 여과없이 다룬 것이다. 김관영 전북지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듯이 잼버리에서 문제가 된 샤워실 냉방장치 화장실 등의 미비는 전북도가 아닌 중앙부처 장관들이 수장을 맡은 조직위원회의 업무였다. 관련 예산도 대부분은 조직위가 집행했다고 한다. 사실이 이런데도 전북도의 책임론만 난무하고 지방을 깎아내리는 언사를 거리낌없이 쏟아냈다.

최근에 만난 여권 고위 인사는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아 걱정이다”고 했다. 그의 말은 ‘부산이 정말 엑스포를 잘 치러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가까웠다. 부산 엑스포나 새만금 잼버리는 모두 국가 행사이다. 공간적으로 ‘지방’에서 열리는 것일 뿐 대한민국의 역량으로 치르는 것이다. 그래서 두 행사 모두 중앙정부가 주축이 된 유치위나 조직위를 구성한 것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가 실패한다면 지방이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외교력이 패배하는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의 성적표는 전북도만의 책임이 아니라 정부의 부족한 준비와 운영력이 빚은 총체적 결과이다.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역시 지방정부이다. 중앙정부나 언론이 서울이나 경기 인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지방정부의 역량 부족으로 생긴 일”이라고 지적한 경우를 본 일이 거의 없다. 이태원 참사 때도 수도권 지방정부에 대해 자질 운운하는 모욕적인 언사는 없었다. 수도권 지방정부나 수도권 지방이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수도권 지방정부는 여타 지방정부와 달리 유능하다는 편견이다. 비수도권 지방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차별적 사고이다. 서울시가 그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으면 다른 지방정부도 동일 사안에는 그 만큼의 권한과 책임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런 편견과 부당한 차별적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세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방이라서 생긴 일이라면 여전히 그 곳은 지방이니 해결책이 나올 리 없지 않은가. 중앙정부와 언론은 비수도권에 대한 차별적 폄하를 멈춰야 한다.


문화재조차 지방에 있으면 푸대접인 경우도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는 고려대장경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이 장경이 어디서 새겨졌는지 풀 지 못했다. 박상국 동국대 석좌교수를 비롯한 학계와 불교계, 경남도와 남해군의 끈질긴 노력 끝에 남해 관음포 인근 선원사지와 백련암지가 장경 판각지라는 증거를 찾아냈다. 2015년까지 3년에 걸친 경남연구원의 발굴조사 성과로 두 곳은 경남도기념물로 지정됐다. 중앙정부는 이를 외면한다. ‘장경이 서울에 있어도 이럴까’ 싶다. 중앙정부는 국가 운영에서 가장 큰 권한을 쥐고 있다. 지방에도 편견을 거두고 권한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기는 게 맞다.

손균근 서울본부장·㈔한국지역언론인클럽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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