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후쿠시마 ‘오염처리수’라고 부르자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2023. 8.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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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안전하다 해도 국민을 더 안심시켜야 한다
막연한 공포의 대상인 방사능…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해해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이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지난 24일 후쿠시마현 우스이오해수욕장에서 시민들이 해수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미국에서 ‘물 마시고 소변 참기’라는 대회가 열렸다. 스물여덟 살 여성 참가자가 3시간 동안 7.5ℓ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는데 몇 시간 뒤 사망했다. 사인(死因)은 ‘물 중독’이었다. 하루 수분 섭취 권장량은 성인 기준 2ℓ. 짧은 시간에 인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이 마시면 물도 독이 될 수 있다.

보톡스는 독성이 매우 강하다. 20ng(나노그램)만으로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용량을 1000분의 1로 줄이면 성형외과에서 얼굴 주름을 펴는 주사제로 사용한다. 사람을 돕는 농도가 있고 사람을 잡는 농도가 있는 셈이다. 유해 물질 또한 안심하고 섭취해도 되는 허용 기준치가 있다. 물에 납이 0.01㎎/ℓ, 비소가 0.01㎎/ℓ, 수은이 0.001㎎/ℓ 이하로 들어 있다면 음용수로 ‘합격’이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최근 주최한 토론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를 ‘오염처리수’로 고쳐 불렀다. 방류 기준에 부합한다는 뜻이다. 생물학적 독성은 ‘용량과 투여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그 두 가지를 명시하지 않고 “아스피린 먹으면 죽을 수 있다”거나 “물 마시면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지금 오염처리수를 향한 괴담도 그런 전제 조건을 무시한 선동에 불과하다. 물론 일본이 방류 기준을 지키는지 계속 감시하고 검증해야 한다.

인류는 방사선 피폭을 견디면서 살아왔다. 일상적으로 먹는 쌀, 배추, 물, 바나나, 우유, 고기, 생선에도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다. 태평양에서 핵실험 수백 회를 한 1960년대에 북반구의 삼중수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물고기와 사람에게 특별한 문제가 발견된 적은 없다. 박일영 충북대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처리수를 한꺼번에 방류한다 해도 우리 해역에 미치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농도 증가는 지금 바다나 생물체 내에 있는 현존량의 1만분의 1에서 100만분의 1 수준으로 대단히 미미하다”며 “수산물을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불안과 공포를 이용해 ‘가짜 위험’을 부각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방사능 분야 석학인 웨이드 앨리슨(82)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하자 “돌팔이”라고 저격했다. 그렇다면 과총은 돌팔이들의 집합체인가. “100% 안전한가?”라는 질문은 어리석다. 그런 식품이나 약품, 기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탑승한다. 리튬 배터리가 폭발한 적이 있지만 휴대폰을 귀에 대고 통화한다.

방사성 의약품의 특성과 인체에 대한 영향을 연구해 온 박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처리수를 가져오면 마시겠다”며 생방송 토론을 제안했다. 정치인이나 환경 단체와는 과학의 언어로 토론할 수 없으니 과학자가 나서길 바랐지만, 3개월 동안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진영의 감옥에 갇혀 듣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지만 과학과 상식을 계속 이야기할 것”이라며 “광우병 사태처럼 다수가 속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점은 희망적”이라고 했다.

정부에 제안한다. ‘오염수’가 아니라 ‘오염처리수’라고 부르자. 과학적 의미의 안전과 국민이 느끼는 안심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식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재앙이었지만 우리가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원전의 안전성이 더 높아졌고 폐로 처리 등 문제에 대처하는 간접 경험을 얻었다. 오염처리수 방류도 위기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고 느낄 수도 없어 막연한 공포를 주는 방사선과 방사성 물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기회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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