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늑대다

김동규 김해대 강사 2023. 8.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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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김해대 강사

“유신헌법 새 체제 아침 해가 솟는다. 엄마 아빠 손잡고 투표장에 나가자.” 과연 뭘 알기나 했을까? 국민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배운 노래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대상으로 설득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鮮然)하다. 감히 국민학생이 부모를 설득하도록 노래와 이념공세를 했던 처참한 교육현장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어디 그뿐이랴. 전두환 정권이 수공(水攻)에 대한 공포를 지어내 ‘평화의 댐’ 성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것처럼 대국민 협박의 꼼수를 폈던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꼼수가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 다시 전개되고 있다. 지난 8월 23일 6년 만에 실시된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1968년 북한이 124군부대 소속 31명을 청와대 습격하기 위해 남파했던 1·21 사태를 계기로 생겨난 ‘을지 연습’과 때 맞추어 이루어진 민방위 훈련은 SMS(Short Messaging Service, 핸드폰 문자 송수신 기능)를 통한 안내와 언론 매체를 동원한 보도도 무색하게 할 만큼 그 결과는 볼품없다. 행정안전부의 설명에 따르면 2023년 주요 훈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무원들의 전시 임무 수행 능력 배양을 위한 불시 비상 소집과 실제 상황을 가정한 기관별 전시 직제 편성 및 개인·부서별 임무 확인 훈련. 둘째, 실제 전쟁 상황과 같은 복합적 상황 조성을 통한 군-정부-공공기관 간 실시간 통합대응 연습 실시 및 기관별 비상대비계획 상호 교차 검증·보완. 셋째, 국가중요시설 테러 대비를 위한 민·관·군·경 통합대응 훈련과 ‘소프트테러’ 대응 훈련, 북한의 무인기 공격으로부터 주요 시설을 보호하는 ‘안티드론체계’ 점검. 넷째, 서해 5도 지역 주민의 대피를 위한 출동훈련과 접적(接敵)지역주민 이동훈련, 읍면동 단위 생활밀착형 훈련 등 국민 참여 훈련 강화이다.

민방위 훈련 때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노 사이렌(No siren)! 조짐이 이상하다. 그리고 방송은 재난 방송 주관사인 KBS에서만 이루어졌다. 차량통제는 서울 3개 구간과 부산 5개 구간으로 한정했다. 왜 그렇게 했을지 그 저의(底意)가 자못 궁금하다. 분명 실패를 예상할 수 있었을 터인데. 지난 24일 일본은 예정대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개시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민방위 훈련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것은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 같은 염려에서 비롯된 것일까? 의문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디세우스(Odysseus)는 트로이(Troy)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인하여 절벽에 배가 부딪쳐 죽게 만드는 새처럼 생긴 여인을 보았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에 솜을 틀어막고, 자신은 스스로 몸을 기둥에 묶어서 그의 유혹을 이겨냈다고 한다. 이 여인이 바로 사이렌(Siren)이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 ‘사이렌의 노래’는 유혹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경보용 파상음(波狀音)을 우리는 사이렌이라 부른다.

학교에서 돌아온 중3짜리 딸이 방송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낸 ‘방송사고’ 경험을 얘기했다. 민방위 훈련이라는 중요한 방송을 손수 진행하겠다며 나섰지만, 방송송출은 기기 오작동으로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라디오 주파수는 EBS로 고정되어 있었고 KBS 1(103.7.MHz)로 조정하는 것을 모른 후배의 실수까지 겹쳤다. 나름 노련하게 진두 지휘를 떠맡았지만, 교감 선생님까지 출동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어찌어찌해서 사과 방송을 하고서야 사고 방송은 종료되었다고 한다. 많은 공무원과 학생이 겪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독단적인 대통령과 여권 정치인들은 차제에 주요한 결정을 할 때 많은 숙고를 해야 한다.


영어에 이런 표현이 있다. “Don’t cry ‘wolf’ too often(직역하면, ‘늑대다’라고 너무 자주 외치지 마라).” 이를 의역하면 거짓 소동을 자주 피우지 마라. 양치기 소년이 심심파적(破寂)으로 한 ‘거짓말 놀이’가 화가 되어 돌아온 것처럼 만약 이와 같은 거짓말 놀이를 계속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정권의 기초를 아래부터 흔들리게 하는 사태를 만날 수도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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