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스마트폰 덮고 하늘 보는 시간 필요한 이유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나오면 나는 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덮고 하늘을 본다. 그러면 늘 마주 오는 하늘은 붉게 물들어 노을 져 있고, 사방에서 매미 소리가 들리면서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 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확실하게 스마트폰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이상 스마트폰 속의 온갖 것들에 중독되어 있지만 그럴수록 나는 의식적으로 그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을 두려 한다.
종종 나는 세상의 소리를 완전히 차단한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물밀듯 쓸려오는 군상을 보고 있으면, 기묘한 기분이 든다. 우리 집 주변에 직장들이 제법 있어 내가 출근 지하철로 향할 때면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내려 나를 향해 쏟아져 온다. 어림잡아 절반 이상은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직장으로 향한다. 그럴 때면 나는 과연 사람들이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일까, 궁금하다.
물론 세상 같은 것이야 딱히 아름다울 것도, 삭막한 도시에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 매미 소리밖에 없으며, 보이는 것도 늘상 똑같은 것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집에서부터 길을 지나 직장에 들러 다시 집에 오기까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스마트폰’ 속에 있겠다고 하는 결심이라면 그런 결심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지나쳐 걷는 공원과 나무와 하늘에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고 하루에 한 순간쯤은 그런 세상에 열리는 게 좋지 않나 느낀다.
사실, 세상에 ‘열리는 법’을 알려주는 최고의 스승은 아이다. 아이는 내가 계속 스마트폰을 내려놓게 만든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사물에 주목하도록 다독인다. 돌담 사이의 달팽이, 산책 나온 지렁이, 밤에 엉금엉금 나무를 기어오르는 굼벵이,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매미, 꽃의 종류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변해가는 구름 모양, 다채로운 하늘의 색깔, 거리에 떨어진 나뭇잎들, 그런 것들을 보는 법을 가르친다. 나는 내 손의 작은 상자에 사로잡힌, 이를테면 매트리스 속 주민이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 속 주민이라는 걸 이따금 자각한다.
수많은 연구들이 증명하길, 우리는 명백히 더 중독적인 사회에서, 중독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당분 중독, 콘텐츠 중독, SNS 중독, 병원 중독,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쇼핑 중독 등 인생은 끊임없는 도파민의 밀고 당기기 게임에 사로잡혀 버렸다. 얼마 전에는 모처럼 지방으로 기차 타고 강연을 다녀오는 길, 나는 한 시간 내내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자연이, 산골이, 숲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신비로웠다. 내가 매일같이 사로잡혀 있었던 이 삶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나는 나를, 그리고 가족과 같은 내 곁의 존재를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데려갈 의무가 있다. 그 삶은 너무 쉽사리 사로잡히거나 중독되지 않는 삶,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순간을 대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세상에 속하는 삶이라 느낀다. 더 많은 당분이나 자극이나 소비를 끊임없이 갈구하느라 스마트폰과 초콜릿에 코가 처박힌지도 모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화롭게 운용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지향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조금 더 의연해져야 하고, 스스로를 보다 잘 달랠 줄 알아야 한다.
삶에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지만 때로는 그 모든 일에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희망은 바로 그런 자리에 있다. 희망은 무언가에 코 박고 빠져 있는 우리의 등 뒤에 있다. 돌아서서 희망을 끌어안으면 그 너머에 있는 수평선이 보인다. 거기에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삶이 있다. 그 감각을 기억해야 한다.
요즘에는 선선한 가을이 오며 하늘이 아름다운 나날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은 그런 하늘을 보는 데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을 되찾는 게 온갖 것에 휩쓸려 다니는 상태에서 벗어나 잠시 하늘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어봐도 좋을 듯하다. 그러면서 나의 삶이 어디쯤 와 있고,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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