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엄마, 실수해도 돼
어머니는 미용사 자격증을 가졌다. 내가 시를 쓰겠다는 열망을 구체화할 무렵, 어머니도 미용 시험을 준비했다. 늦된 어머니가 가능할까 싶었다. 필기도 두어 번 떨어졌고 실기는 인터넷으로 예약해 주어야 했으며 주말엔 도구와 가발을 챙겨 시험장까지 태워 드려야 했다. 문제는 내가 비밀로 하고 있던 시 공부와 어머니의 주말 시험이 겹칠 때였는데, 그때마다 서로 역정을 냈다. 티격태격 2년이 지나 어머니가 합격했을 때 나는 놀랍고 기꺼웠다. 그 합격은 큰 응원이 되었고 한두 해 뒤 나도 등단을 했다.
그 이후 어머니는 내 머리를 깎아준다. 좁은 화장실 안에서 변기 뚜껑 내리고 그 위에 올라앉아 포도색 너른 천을 목둘레에 걸치면, 나는 사로잡힌 문어처럼 뜨악한 기분으로 어머니의 가위질과 대면하게 된다. 처음 어머니가 머리를 잘라준 날, 그 형편없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나아져 이젠 마을회관 할머니들 머리를 손봐주고 대학병원에서 봉사활동도 한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깎을 때 유독 긴장한다. 한 번 자른 데를 돌아와 또 다듬고 불가능한 각도로 숱을 치다 내 귀를 찌르고 자신의 손을 벤다. 변기에 한 시간 넘게 붙박여 있으면 나는 지겨워 환장을 한다. 어머니는 두상이 못나서라 투정하고 나는 그 또한 당신이 창조한 물질이니 제대로 수리하라 따진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이룬 삐뚠 앞머리와 대칭이 엇나간 구레나룻이 좋다.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각거림이 고개 꺾어 훔쳐보는 곁눈질만으로도 마음에 벅차오른다. 어머니는 내 머리에 관한 한 최고의 예술가다.
못 깎는다 직고하면 진실로써 상처 주는 일이고, 못 깎지만 잘한다는 거짓은 사회생활이며, 못 깎아도 괜찮다는 말은 우정의 영역이지만, 못 깎는데 정말로 잘 깎은 것으로 믿게 됨은 사랑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무더운 여름날 함께 화장실에 들어선 어머니에게 사랑의 의미와 고통을 재확인하기 위해 간곡히 청한다. 엄마! 실수해도 돼. 또 자랄 거잖아. 스타일 상관 없이 제발 20분 안에만 끝내 줘. 나의 시 역시 새로이 시작하고 성장하는 숱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로 풍성해질 수 있길 소원하면서.
채길우 시인·제약회사 연구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드민턴협회 이사 14명 “김택규 회장 큰 해악, 사퇴해야”
- “배드민턴 실패보다 더 충격”… 이용대, 이혼 뒤 처음 밝힌 심경
- 아다드 마이아, 코리아오픈 테니스 첫 우승
- 포항, 조르지 극장골로 6연패 탈출
- SSG 파죽의 6연승, 5위 탈환... 오리무중 빠진 가을야구
- 이재명, 임현택 의협 회장 면담…“정부가 개방적으로 나와야”
- “젊은 세대 많이 보길”… 尹 추천 영화 ‘무도실무관’ 무슨 내용
- 헤즈볼라와 40년 악연, 끝장 보려는 이스라엘
- 울산 지진 “느꼈다” 유감 신고 4건...인명·재산 피해 신고 없어
- 아이슬란드로 떠내려온 북극곰… 민가 쓰레기 뒤지다 사살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