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기재부의 ‘규정 마사지’

김경필 기자 2023. 8.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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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열리면서 회의장에 '2022년도 공기업 경영실적 평가보고서' 책자가 놓여 있다./장련성 기자

기재부가 공공 기관들을 평가하라며 2018~2020년 위촉한 민간 전문가 323명의 거의 절반인 156명이 임기 중 공공 기관들에서 돈을 받았다. 자문료, 연구 용역비, 강의료, 회의 참석 수당 등 명목인데, 핵심은 ‘수험생’이 ‘채점관’에게 돈을 줬다는 데 있다. 공공 기관들로서는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평가 위원들이 매긴 등급에 따라 공공 기관 임직원이 그해 받을 수 있는 성과급 한도가 정해진다. 낙제점을 받은 기관 임원은 해임도 된다.

채점관이 수험생에게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상식이다. 공공 기관도 마찬가지. 돈을 받은 채점관을 잡아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았다. 기재부가 규정의 세부 사항을 ‘마사지’해서, 규정을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부렸기 때문이다. 원래 규정은 이렇다. “평가 위원은 임기 중 평가 대상 기관에서 돈을 받는 일체의 활동을 할 수 없고, 돈을 받았다면 5년간 다시 위촉될 수 없다” 그러나 기재부는 이렇게 살짝 바꿨다. “최근 5년간 받은 돈이 1억원 이하면 신규 위원으로 뽑을 수 있다” 2018년 한 평가 위원은 9개 기관에서 돈을 받았지만, 한 해 건너뛰고 2020년 다시 위촉됐다. 직전 연도에 위원을 하지 않았으니 ‘신규 위원’이라는 것이다. “올해 받은 돈이 한 번에 100만원 이하면, 내년에도 위촉될 수 있다”는 기준도 있다. “교수가 공공 기관 회의에 참석하느라 들어간 거마비(車馬費) 등을 보전받은 것까지 돈 받은 것으로 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누가 걸릴까.

이렇게 위촉된 평가 위원 일부는 평가 기준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등급을 매겼다. 어느 기관은 중대 재해를 일으켜 대폭 감점했어야 하는데 ‘다른 위원들이 이미 안 좋게 평가했을 것’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기준보다 적게 감점한 사례도 있다. 특정 기관 점수를 잘못 매긴 사실이 중간에 드러나자, 이미 매겨놓은 종합 순위가 바뀌지 않게 하려고 엉뚱한 항목 점수를 더하거나 빼기도 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평가는 위원들이 독립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기본적인 감독도 하지 않았다.

감사 결과를 기사로 쓴 기자에게 기재부에서 항변의 전화가 왔다. ‘공공 기관 돈을 1원이라도 받았다고 해서 배제하면, 평가 위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민간 전문가를 위촉하는 다른 정부 기관도 다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기재부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민간 전문가 323명 중에서 167명은 그 와중에도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것. 상식에 기반을 두고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기재부 입맛에 맞는 사람만 평가 위원으로 ‘모신다’는 세간의 잘못된 오해를, 이제 스스로 바로잡을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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