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기습키스 분노 확산… “女선수들 상습 성차별 정점”
축구연맹 회장, 강제키스 파문
피해 女선수 “압력에 굴복 안해”
총리도 “용납 못할 행위” 비난
스페인 공주 옆에서 ‘기습키스’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시상식에서 스페인왕립축구연맹(RFEF) 루이스 루비알레스 회장(오른쪽)이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대표팀 공격수 제니 에르모소(원래 등번호는 10번이지만 경기 후 11번 선수 유니폼을 입었음)의 얼굴을 끌어당겨 강제로 입을 맞추고 있다. 왼쪽 옆에 레오노르 스페인 공주가 있다. X(옛 트위터) 캡처 |
● 코치 6명 항의성 사퇴…FIFA도 직무정지
사건 후 일주일 새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사건 직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던 에르모소 선수는 2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루비알레스 회장의) 당시 행위를 정당화하는 발표를 하라는 지속적인 압력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직장에서도 동의 없는 행동으로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된다. 이런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스페인 여자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성과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밝혔다.
‘기습 키스’가 논란이 된 직후 루비알레스 회장은 “다들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이에 22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까지 나서서 “우리가 본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제스처였다”고 비판했다. 빅토르 프랑코스 스페인 체육장관도 루비알레스에 대한 업무 정지 절차에 착수하며 “스페인 축구를 위한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의 순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루비알레스 회장은 “내가 실수를 했다. 악의 없이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고 중요 기관 수장인 만큼 더욱 조심할 것”이라고 뒤늦게 사과했지만 사퇴 여론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영국 BBC방송 등은 이번 우승 주역 23명을 비롯해 81명의 선수가 루비알레스가 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스페인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 경기하지 않겠다는 서명을했다고 전했다. 26일에는 여자 대표팀 코치진과 다른 연령별 대표팀 코치 6명이 루비알레스 회장을 규탄하며 사퇴했다. 같은 날 FIFA도 루비알레스 회장에게 90일 직무정지 징계를 내린 뒤 조사에 착수했다. 스페인 남자 축구 대표팀의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 역시 “축하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 “女 선수들에 대한 상습 차별의 정점”
스페인 여자 축구팀의 위상을 올려놓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루비알레스 회장이 ‘기습 키스’ 논란으로 축구계의 공적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2018년 취임 때부터 “남녀 모두를 위한 협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여자 선수들에게도 2027년까지 월드컵·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등 주요 대회 참가에 따른 포상금을 남자 선수들과 동등하게 지급하는 협정에 지난해 서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6일 “루비알레스의 행동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여성 선수들에게 이뤄진 수년간 차별(mistreatment)의 일환이자 그 정점”이라고 분석했다. NYT에 따르면 스페인 여자 축구 대표팀은 체계적인 훈련시설이 부족한 환경에서 연습해왔고 유니폼도 여성의 신체에 맞춰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대표팀 선수 15명은 호르헤 빌다 감독의 훈련과 선수 관리가 권위주의적이라며 RFEF에 해임을 요구했다. 20일 잉글랜드와의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선취 득점에 성공하자 빌다 감독이 옆에 있던 여성 코칭스태프를 끌어안으며 가슴을 만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스포츠계의 성폭력과 성차별이 스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에 패해 탈락한 잠비아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도 감독이 선수들의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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