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모든 인류가 우주를 볼 수 있다면, 세상이 바뀔 겁니다”
8500만 시민 무료 입장 LA 그리피스 천문대가 큰 역할
과학자는 대중 가르치지 말고 함께 경험하고 호흡해야
지난 7월 제임스웹 망원경이 1주년을 맞았다. 허블 망원경을 대체하기 위해 무려 100억달러(한화 13조4000억원)를 들인 이 거대 망원경은 지난 1년간 우주에 대한 시야를 한 단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별의 탄생에서 소멸까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미지들은 경이롭지만, 사실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많은 세금이 투입되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런 대형 과학 프로젝트는 논쟁에 휘말리기 쉽다. 그런데 대형 망원경의 역사에는 대중의 지지를 위한 고민이 있었다. 전문가 영역이던 우주 관측에 사람들을 끌어들여 인식을 바꾼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리피스(Griffith) 공원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할리우드(Hollywood)’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걸려 있는 산으로 유명한 이곳은 그리피스 젠킨스 그리피스(Griffith Jenkins Griffith)라는 인물이 LA시에 기증한 3015에이커(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토지에 조성된 도시공원이다. 가장 대중적인 과학 공간으로 잘 알려진 그리피스 천문대가 여기에 있다. LA 도심을 내려다보는 최상의 조망을 제공하는 이 천문대는 제임스 딘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 등장했고,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성과 이름이 같은 그리피스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1850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무일푼으로 뉴욕항에 도착해 19세기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Gold Rush)에 금광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금광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신문기자를 하며 얻은 금광 개발 내부 정보를 이용해 돈을 챙겼다. 이미 30대에 백만장자가 된 그는 LA에 정착한 뒤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악덕 재벌에 괴팍한 성격이라 비난은 여전했고, 심지어 총격까지 받는다. 1896년 LA에 도심 공원이 필요하다며 거대한 땅을 기부한 것은 도시 유력자로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공원이 만들어지자, 평판은 변해갔다.
하지만 암살 위협에 시달린 탓인지 조금씩 정신이 불안정해졌다. 결국 1903년 자기 아내를 총으로 쏘게 된다. 창문으로 뛰어내려 겨우 살아남은 아내는 한쪽 눈을 실명한다. 명백한 살인미수였지만 유능한 변호사는 “술에 취해서”라는 논리로 2년 징역형으로 막아낸다. 그리피스는 진심으로 반성한다며 가석방도 거부하고 교도소 내에서는 힘든 작업만 골라서 하는 기이한 행적도 보인다. 그렇게 2년간의 수형 생활을 꽉 채우고 출소했지만, LA 지역 사회는 그를 멸시했다. 그 사이 시 당국은 그리피스(Griffith)산의 이름을 할리우드(Hollywood)산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그에게 인생의 마지막 영감을 준 것이 1904년 문을 연 윌슨산 천문대(Mount Wilson Observatory)였다. 대형 망원경의 시대를 연 천문학자 조지 엘러리 헤일(George Ellery Hale)이 최적의 관측 장소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LA 근교의 윌슨산이다. 관광지로 개발 중이던 이곳은 호텔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용지 확보가 쉽지 않았다. 즉시 헤일은 일반인 접근이 가능하게 한다는 기발한 조건을 제시하고, 매출 증가를 기대한 호텔 측이 합의하며 천문대가 세워졌다. 그 혜택으로 1908년 그리피스는 윌슨산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할 기회를 얻었다. 여기서 본 천체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그는 이렇게 외쳤다. “모든 인류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볼 수 있다면, 세상이 바뀔 겁니다!”
그리피스는 이 시점부터 LA 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천문대를 그리피스 공원에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훨씬 더 대중적인 천문 과학관이었다. 도심에서 가까운 곳이라 접근이 쉽고, 무료로 입장해 누구나 망원경을 볼 수 있으며, 우주 과학을 배울 수 있는 과학관을 꿈꾼 것이다. 1912년 그는 LA시에 천문대 건설에 사용해 달라며 기부 의사를 밝히지만, 당국은 아래와 같이 즉각 거부한다. “자라나는 소년 소녀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뇌물(bribe)’을 받기를 거부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돈을 받을 정도로 공공의 품위를 잃고 가난하지 않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1913년에는 그리피스 공원에 야외공연장을 건설해 달라고 다시 기부 의사를 밝힌다. LA시는 이번에도 거부했다. 결국 그는 남은 모든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어 언제가 되든지 LA시가 허락하면 그리피스 공원에 대중 과학 천문대와 야외 공연장을 건설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리피스가 1919년 사망하자, 그제야 LA시 당국은 이 유언을 받아들인다. 1929년 야외공연장인 그리스 극장(Greek Theatre)을, 1935년 그리피스 천문대를 개관한다. 천문대 설계는 그리피스에게 대중 천문대의 영감을 준 조지 엘러리 헤일이 주도했다.
현재까지 그리피스 천문대는 8500만 명이 입장했으며, 대중 과학관의 상징이 되어 천문관측을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게 했다. 윌슨산 천문대 역시 일반인들에게 대형 망원경 관측 기회를 더 확장했다. 심지어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이 우주 팽창 이론을 발견한 100인치(2.5미터) 구경의 초대형 망원경으로 우주를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개방성이 허블 망원경이나 제임스 웹 망원경과 같은 거대 프로젝트에 호응하게 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대중을 가르치고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과학의 논리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대중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피스 천문대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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