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76] 피타의 좌절
탁신은 돌아왔고 피타는 의원직을 잃었다. 태국의 정치 권력은 지난 20년간 범민주 진영을 대표해왔던 프아타이당이 군부와 손잡으면서 ‘군부 대 탁신’의 구도가 ‘보수대연합 대 개혁’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레드 셔츠’의 강고한 지지로 2006년 쿠데타로 실각하여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매번 총선 때마다 승리를 놓치지 않았던 탁신의 불패 신화를 깬 인물은 하버드 출신의 40대 젊은 엘리트로 전진당(MFP)을 이끄는 피타 림짜른랏이다. 그의 전진당은 방콕 33개 선거구 중 32개를 휩쓰는 돌풍을 일으키며 탁신의 프아타이당을 누르고 원내 1당을 차지했다.
왕실과 군부의 독점적 권력에 환멸을 느낀 2030세대는 군부 시대를 끝낼 것으로 기대되는 젊은 민주주의의 지도자에 환호했지만 언제나 친위 쿠데타로 민주주의 진영을 좌절시켜온 군부는 오랜 대결 상대였던 프아타이당과 연합하여 전진당을 야당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미 70대로 들어선 탁신은 전용기를 타고 15년 만에 유유히 귀국했고 곧바로 수감되었지만 사면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피타는 선거법 위반 명목으로 의원직까지 정지당했다.
‘미스터 클린’이라고 불렸던 잠롱 전 방콕 시장 같은 인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도 육군 소장 출신이다) 왕실과 군부의 개혁으로 태국을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피타의 전진은 일단 제동이 걸렸다.
불평등의 척도인 태국의 지니계수는 0.43으로 동아시아국가 중 가장 높다. 불평등은 독점과 부패의 필연적인 결과이며 산업 경쟁력 약화와 분열로 이어진 것이 현재 태국의 현주소다. ‘멀고 험난한 길’은 비틀스의 마지막 No.1 히트곡으로 이 전설적인 밴드의 백조의 노래가 되었다.
“수많은 외로운 날들, 셀 수도 없는 눈물의 날들/당신은 결코 알 수 없겠죠, 내가 겪은 수많은 좌절의 시도들을/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저를 멀고 험한 길로 다시 내모는군요(Many times I’ve been alone, and many times I’ve cried/Any way you’ll never know, the many ways I’ve tried/And still they lead me back, to the long and winding road).” 민주주의로 가는 태국의 길은 아직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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