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돌부리와 그릇
살다 보면 돌부리를 차고 화를 내기도 한다. 홧김에 돌부리를 재차 걷어차다 그만 발부리가 아파 절절매기도 한다. 돌부리는 애초 거기 있었을 뿐 매복한 게 아니고, 또 누가 심어 놓은 것도 아니다. 사람 관계에서도 그렇다. 모르면 그저 다른 산의 다른 돌일 뿐이고 가까워지다 보면 디딤돌이 되기도 하고 또 돌부리가 되기도 한다. 디딤돌이 돌부리로 느껴지는 건 대체로 내가 보인 정성이며 공이 그쪽에서 보인 정성이며 공과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그 역시 이른바 정의의 문제인 셈이다. 정의도 그렇지만 정성이며 들인 공을 객관적으로, 누구나 똑같이 잴 저울이 문제다. 그런 저울이 있어야 하는지 그 타당성 여부도 문제이지만 그걸 제쳐 놓더라도 그런 저울이 있을 수 있는지의 현실성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니 사람은 저마다 제 그릇대로 산다. 그래서 저울도 그릇에 따라 눈금이 달라진다. 그릇이 작고 보잘것없을수록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내 눈의 들보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야 한다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환경과 자신의 노력 등으로 그릇 모양은 얼마든지 키우고 가다듬을 수 있다. 이게 창조론과 어긋난다고 보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우주 삼라만상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 씨를 만드셨고, 기본적으로 살아갈 원리를 주셨다. 그러니 나머지는 스스로 노력하고 가다듬으며 저만의 그릇을 만들어가야 한다.
나만 해도 내 그릇을 나름대로 다듬고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 역시 내가 한 잘못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한 잘못에 더 예민하다. 그릇이 작을수록 감정은 자기중심적이고 만족을 모르며, 모든 걸 자기 위주로 받아들이려 한다. 특히 안 좋았던 일에 대한 기억은 끈질기다. 경험 중에 좋고 감사한 일은 쉬 잊고 상처나 모욕은 두고두고 기억한다. 통증은 그런 감정을 더 들쑤신다. 그러면서 자꾸만 외부로 쏠린다. 감정이 밖으로 향한다고 안이 평화로워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걷잡을 수 없게 활활 타오른다. 그러다 보면 미래는 없고 오직 과거와 아픈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그릇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 더 감사한 마음으로 표현하자면 올해 여름 강원도 오대산 명상 길에 그런 생각들이 정리됐다. 그 덕에 그릇이 좀 반듯해지고 좀 더 커진 듯하다.
저울 들 생각을 말든가, 들어야 한다면 내 그릇에 함부로 맡기지 말자. 다른 이들 행동은 그 나름의 그릇에서 비롯한 것. 내 보기에 그 그릇이 작다거나 볼품없다거나 해서 내가 속상해 할 일이 아니다. 내 화도 결국 내 그릇에서 비롯한 것. 그러니 화내고 속상해하지 말고 그릇을 닦고 키우자. 그렇다고 단번에 해결되는 일은 없다. 모르긴 해도 죽을 때까지 닦고 키워야 할 그릇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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