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내 말이 틀리다면, 내 연봉을 가져가시오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지난 시즌 중반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가' 리버풀은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FA컵, 리그컵 등 모든 토너먼트 대회에서 조기 탈락했고, EPL에서도 중위권을 맴돌았다. 위르겐 클롭 감독 체제에서 최악의 성적이었다. 클롭 감독 경질설까지 나돌기도.
그런데 시즌 종반으로 가니 리버풀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연승 가도를 달리며 무섭게 상위권 팀들을 위협했다. 11경기 무패 행진. 비록 5위로 시즌을 마쳐 UCL 진출권은 놓쳤지만, 시즌 막판 리버풀의 기세는 엄청났다.
리버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기력한 모습에서 역동적인 모습으로 대변신. 그 비밀이 밝혀졌다.
펩 레인데르스 리버풀 수석코치가 그 비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2014년부터 리버풀 수석코치로 일하고 있다. 클롭 감독의 리버풀 생활을 모두 함께 했고, 클롭의 오른팔로 불린다. 클롭 감독보다는 무려 16살 어리다.
레인데르스 코치는 시즌 종반 과감한 도전을 했다. 경기는 꼬이고, 시즌을 망치는 꼴을 더 이상 보지 못했던 레인데르스 코치는 클롭 감독을 찾아갔다.
그리고 제안했다. 전술을 바꾸자고. 코치가 감독의 전술에 대해 평가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클롭 감독의 전술이 통하지 않고 있으니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것도 16살이나 많은 대선배 감독에게.
레인데르스 코치가 제안한 전술은 포백의 수비수 중 한 명을 경기 도중 미드필더 안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을 위해 레인데르스가 찍은 최적의 선수는 라이트백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였다. 알렉산더 아놀드를 중원으로 올린 뒤, 미드필더 숫자를 늘려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이 전술의 핵심이었다.
레인데르스 코치는 이 전술에 확신이 있었다. 때문에 단호하게 클롭 감독에게 제안했다. 클롭 감독은 '꼰대'가 아니다. 레인데르스 코치의 의견에 동의를 했고, 전술을 교체했다.
이 전술은 통했다. 이후 거짓말처럼 리버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파죽의 무패행진의 시발점이었다. 리버풀 부활의 핵심이었다. 레인데르스 코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작은 변화로 팀이 달라졌다. 미드필더를 지배하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존 스톤스를 활용하던 전술에서 착안을 했다. 나의 선택은 알렉산더 아놀드였다. 그의 창의적인 능력이 이 역할과 잘 맞아 떨어졌다. 리버풀은 다시 콤팩트해졌다. 팀은 다시 뭉쳤고, 다시 균형을 잡았다. 이전에 겪었던 혼란은 없었다. 작은 변화로 인해 선수들이 다시 자유롭고 편안하게 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레인데르스 코치는 처음에 클롭 감독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꼽히는 클롭 감독이다. 그를 전술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레인데르스 코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레인데르스 코치는 이 전술을 클롭 감독에게 설명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 극단적인 약속은 이거다.
"감독님, 만약 제가 제안한 전술이 효과가 없다면, 저는 1년 연봉을 받지 않겠습니다."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위르겐 클롭 감독과 펩 레인데르스 수석코치,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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