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 칼럼] 꼰대문화와 헤어질 결심
‘까라면 까’라는 식의 고집·독선
사회구성원의 공감·설득은 생략
더 큰 위기도 이렇게 넘어갈 건가
개인이든 국가든 누구나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모두가 위기를 잘 극복하는 건 아니다. ‘총균쇠’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최신 저작 ‘대변동’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기회를 여는 국가의 노하우를 다룬다. 기후 변화, 경제 위기, 사회적 재난 등 각종 위기가 닥칠 때, 성공적인 대응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중요한 기준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영 사흘 만에 정부는 ‘위기 대응’을 선언했다. 총리가 현장에 달려가 화장실 변기를 닦았고, 대통령은 냉방차 지원을 지시했다. 300억원 추가 예산이 풀리자 현장이 비로소 진정되고 의료 지원이 더 원활해졌다. 태풍이 닥치자 과감하게 야영장 철수와 전국적인 잼버리 운영을 선언했다. 이어 공기업, 기업, 대학에 도움을 요청했다. 상처받은 어린 대원들을 달래고 성난 지구촌 민심을 다독이는 역할은 공무원, 민간, K팝 전사들이 함께 떠맡았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 정부에 꽤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민심은 싸늘하다. 왜 그럴까? 국가와 국격이 일방적으로 강조되면서 구성원을 설득하고 공감과 동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국격을 앞세우는 국가주의는 쉽게 말해 ‘까라면 까’라는 정언 명령이다. 국가와 국민은 동일체이고 국난 앞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우리 국민은 ‘까라면 까’라는 상명하복을 꼰대의 고집과 독선으로 여긴다.
워싱턴포스트는 국가의 동질성과 구성원의 충성심을 전제로 삼는 다이아몬드식의 위기 해결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심동체를 이루는 국가는 드물고 되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일반적이므로, 위기를 목전에 두고 국가적 합의를 이룬다는 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개성과 취향이 폭발하는 젊은이들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글로벌 규범을 우선시하며 자유로이 살고 있지 않나.
잼버리 사태를 왜 IMF 외환위기와 견주어야 하는지, 국제 체육 행사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고 국격이 무너지냐며 비아냥대는 의견이 많았다. 국가가 싸놓은 오물을 왜 국민이 치워야 하는지 되물었다. 과연 우리는 역경 앞에 하나 될 수 있을까? 단일 대오를 만드는 게 우리 국가와 민족의 핵심 가치인가? 이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위기 앞에 단일 민족으로 하나 되는 대한민국은 어쩌면 상상적 공동체에 불과하다.
젊은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이 블라인드를 통해 현실 고발에 나선 건 되레 고무적이다. 이들은 어설픈 국가주의가 구성원들의 자율과 선택을 속박하고 희생을 강요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설픈 국가주의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도 질식시킨다. 역경 앞에 도움을 청하는 건 순리지만 그 도움이 강압에 바탕을 둔 거라면 본질은 왜곡된다. 기숙사를 열고 식당을 운영한 모든 대학과 기업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발적 봉사를 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자발적인 협조를 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진실하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내가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면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동기 부여가 확실하니 도파민이 분비되고 신나게 창의적으로 봉사할 몸과 마음이 준비된다.
정부는 위기 극복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투명하게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향후 위기 대응 매뉴얼을 새롭게 짜자. 꼰대 문화와 헤어질 단호한 결심이 서야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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