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위험해진 푸틴…서방 당국 “프리고진 ‘암살’됐을 것” [뉴스+]

조성민 2023. 8. 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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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당국 ‘푸틴이 암살 승인한듯’ 판단…영국도 ‘고의 추락’ 추정
“프리고진 전용기 추락, 미사일 격추 아닌 내부 폭발 때문인 듯”
러, 프리고진 사망 배후설에 “완전한 거짓말, 노골적 무시” 반발
러, 바그너그룹에 ‘국가에 충성’ 맹세 의무화…푸틴, 법령 서명
“푸틴, 더 위험해졌다…프리고진 사망, ‘권력유지 최우선’ 신호”

“러시아에서 푸틴이 배후에 있지 않은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을 이끌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갑작스러운 사망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는 ‘암살설’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서방 당국은 푸틴 대통령을 직접 지목하진 않았지만, 에둘러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이같은 추측을 전면 부인하는 중이다. 외신은 이번 사건을 두고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최우선에 둔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그가 더 ‘위험한 인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AFP연합뉴스
◆비행기는 내부 폭발로 추락…서방 ‘푸틴 배후설’에 무게

러시아 군 수뇌부를 겨냥한 무장 반란을 일으킨 지 두 달만인 지난 23일(현지시간) 프리고진은 의문의 비행기 추락으로 숨졌다. 사건 직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는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누가 그런지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당국은 프리고진이 암살됐을 것으로 관측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프리고진의 비행기 추락 사망이 푸틴 대통령이 승인한 암살일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 당국의 초기 평가가 나왔다고 25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익명을 전제로 이 사건 초기 평가를 논의한 당국자들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중 추락한 비행기가 지대공 미사일이 아닌 기내에 설치된 폭탄에 의해 파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영국 당국은 정확한 비행기 추락 원인은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비행기를 고의로 추락시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현지 당국자가 전했다.

AP 통신은 미국 당국이 초기 정보 평가에서 프리고진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 추락이 의도적인 폭발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초기 평가를 설명한 미국과 서방 당국자 중 한 명은 프리고진이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또 이번 폭발이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침묵시키려는 푸틴 대통령의 ‘오랜 역사’와 일치한다고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미국과 서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아직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비행기 추락이 폭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전제로 당국자들은 폭탄이나 기내에 설치된 다른 장치에 의해 폭발이 일어났을 수 있다면서 오염된 연료 등 다른 가능성도 조사 중이라고 했다.

미 연방항공국(FAA) 사고조사단에서 일했던 제프 구제티는 추락 영상과 잔해,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기내 폭발의 모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또 호주 그리피스대 안전과학혁신연구소 소속의 시드니 데커는 비행기 날개가 기체에서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발사체로 비행기를 포격하거나 내부에서 폭발이 있을 때 나타난다고 짚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일부 러시아 매체들은 크렘린궁 안보 당국자를 인용해 폭발물 1~2개가 비행기 내부에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부 보도에서는 비행기 후미 화장실 인근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러시아 당국은 추락 사고의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프리고진의 사망에 대해 “그는 유능한 사업가였지만 힘든 운명을 타고났고 실수도 했다”며 입장을 내놨다. 이어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가 이번 사고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고했다”며 “조사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수사관들이 뭐라고 할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즉시 조사가 시작됐다”면서 서방 언론 보도가 아닌 ‘팩트’를 보라고 촉구했다고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트베리 지역의 쿠젠키노 마을 근처에서 전용기 잔해가 추락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더 위험해진 푸틴…바그너 그룹 장악

이번 사건은 결론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학자로 활동 중인 에릭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반란 사태의 초기 국면이 “푸틴을 약하게 보이게 했다”면서 “이것(프리고진의 죽음)은 조직의 ‘대부’(godfather)로서 푸틴의 역할을 다시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민간 용병단인 바그너그룹 병사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 맹세’를 의무화하며 ‘프리고진의 유산’을 완전 장악했다. 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군사 임무 수행에 기여하는 이들이 의무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 법령은 러시아 연방에 대한 충성 맹세 의무화 대상의 범위를 비정규군 민간단체에도 확대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령은 충성 맹세를 할 대상에 ‘자원봉사 조직 구성원’을 포함했는데 이는 사실상 바그너그룹과 같은 민간 용병조직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법령은 ‘러시아 연방을 방어하기 위한 정신적·도덕적 기반 형성’이 목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병사들은 러시아 연방에 충성을 서약하고 지휘관과 상관의 명령을 엄격히 따르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NYT는 지난 23일 프리고진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타전됐을 무렵 푸틴 대통령이 TV에 나온 모습에 주목했다. 푸틴은 제2차 세계대전 쿠르스크 전투 8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 TV로 중계된 행사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검은색 배경에 빨간 조명으로 웅장한 느낌을 낸 무대에서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하고 군인들에 훈장을 수여한 뒤 호국영령을 기리는 묵념을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때 프리고진이 타고 있던 전용기가 화염에 휩싸여 땅으로 곤두박질쳤다는 소식이 전파됐다.

극명한 대비를 이룬 두 장면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2차대전 기념식장에서의 푸틴 대통령의 모습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에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자신의 장악력과 힘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NYT는 해석했다. 
바그너 그룹 용병들 모습. AP연합뉴스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 미하일 비노그라도프는 러시아 집권층의 중심부에 있던 인물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암살’로 사망한 적은 없다면서 “가혹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노그라도프는 크렘린궁이 프리고진 살해를 승인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 어린 시선을 무마하려는 노력을 그다지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짚었다.

러시아의 유명 언론인 콘스탄틴 렘추코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러시아 엘리트층의 반응에 대해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며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이 그를 반역자라 불렀다”며 “그걸로 이 사람(프리고진)이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기에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푸틴의 연설문 작성가 출신인 정치 평론가 압바스 갈랴모프는 NYT에 “어떤 신호를 보내기 위해 푸틴은 많은 프로젝트에서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이는 지금 당장 푸틴의 우선순위는 외연 확장이 아니라 권력유지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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