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현 대통령, 부정선거 논란 속 재선…물 건너간 ‘무가베 망령 청산’
아프리카 짐바브웨 대통령 선거에서 에머슨 음낭가과 현 대통령(사진)이 승리했다. 투표용지 미교부와 참관인 체포 등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 선거관리위원회, 언론 등 주요 기관을 모두 장악한 음낭가과 대통령이 손쉽게 재선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전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불렸던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부터 시작된 집권여당 자누-PF의 43년 철권통치는 이번에도 청산되지 못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발표된 짐바브웨 대선 결과 자누-PF 후보로 출마한 음낭가과 대통령이 득표율 52.6%로 과반을 확보해 당선됐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변화를 위한 시민연합당(CCC)’의 넬슨 차미사 대표는 예상보다 저조한 44.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도 자누-PF는 전체 270석 가운데 136석을 획득해 다수당이 됐다. CCC는 7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다만 영국 가디언은 “자누-PF가 헌법 개정에 필요한 의석수 3분의 2 확보엔 실패했다”며 “대통령 임기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상황은 면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짐바브웨 대선은 무가베 전 대통령과 음낭가과 대통령으로 이어진 자누-PK 장기집권 종식 여부로 관심을 모았다. 야권은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총리로, 1987년부터 2017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과 탄압을 자행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은 무가베 전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할 마지막 기회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1978년생 차미사 CCC 대표는 ‘40대 기수론’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정권교체 기대감을 높였다. 2018년 출마해 음낭가과 대통령과 한 차례 맞대결을 펼쳤던 차미사 대표는 “이번엔 반드시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가베 정권하에서 부통령과 장관 등 요직을 거친 음낭가과 대통령은 사실상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차미사 대표와 야권을 견제했다. 지난 23일 대선 투표 당일 일부 지역에선 투표용지를 받지 못한 유권자가 속출했고, 이로 인해 투표 종료 시각을 넘겨서까지 선거가 진행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경찰은 CCC 등 야권 몫으로 배정된 참관인을 별다른 이유 없이 체포하기도 했다. 반면 여당 지지 세력은 투표소에 책상을 놓고 앉아 기표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하는 등 위협을 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제사회는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로 얼룩졌다며 비판 메시지를 쏟아냈다. 대선 감시단을 맡았던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선거는 짐바브웨 헌법과 선거법, SADC의 원칙과 민주선거 관련 지침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CCC도 논평을 통해 “적절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발표된 결과를 거부한다”며 “우리는 국민이 쟁취한 승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음낭가과 대통령의 재선으로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는 짐바브웨 앞날은 더욱더 어두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무가베 전 대통령에 이어 음낭가과 대통령도 통화 붕괴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여전히 재정적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알자지라도 “짐바브웨 국민 90% 이상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며 “한때 남부 아프리카의 곡창지이자 대륙의 첨단 제조산업 국가였던 짐바브웨에 창백한 그림자가 드리웠다”고 평가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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