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선 의식해 ‘사우디의 난민 학살’에 눈감았나
사우디·이스라엘 국교 수립 위해 빈살만 심기 고려 의심
“우려 제기” 해명에도 미 ‘사우디 딜레마’ 다시 도마 올라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수비대가 예멘을 통해 입국을 시도한 에티오피아 이주민을 대량 살상했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가 지난해 가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26일(현지시간) 제기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주선해 외교 치적으로 삼으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만행에 일부러 눈 감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미국은 지난해 사우디 당국이 이민자에게 총격과 포격, 학대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21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약 15개월 동안 에티오피아 이주민을 공격해 최소 655명이 숨졌다고 밝힌 바 있다.
NYT에 따르면 미 고위 외교관들은 지난해 가을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예멘 국경에서 에티오피아 이민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엔 유엔과 비공개 회의를 열고 사망자와 부상자 수 등의 구체적인 자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엔 예멘 주재 스티븐 파긴 미국 대사도 참여했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 1월 리처드 밀스 유엔 주재 미 부대사가 예멘 내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사우디 국경에서 발생한 이민자 학대 의혹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NYT는 “얼마나 많은 아프리카인이 사망했는지 알게 됐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후에도 미 정부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다가 최근 HRW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미 국무부가 “이런 의혹들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사우디 정부에 알렸다”며 “사우디 당국이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에 착수하고,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지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NYT 의혹 제기에 “지난 1월 안보리 브리핑을 포함해 사우디에 정기적으로 우려를 제기해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 정부가 사우디의 이민자 집단 살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당 문제가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NYT는 “최근 몇달 동안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사우디 관리들과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 수립과 관련해 많은 대화를 해왔다”며 “다음달 인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별도로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와 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인권 문제보다 경제 이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 정부의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시각도 있다. NYT는 사우디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 반대에도 원유 감산을 단행하고, 러시아 제재에도 동참하지 않는 등 독자 행보를 계속해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사우디와 같은 부유한 파트너와 거래할 땐 인권 침해가 아무리 심각해도 이를 우선순위에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사우디 딜레마’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4월 비영리 인권단체 ‘프리덤 이니셔티브’ 보고서를 인용해 사우디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반정부 인사를 겨냥해 살해 위협 등 겁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프리덤 이니셔티브는 “미국은 현행법을 위반하는 사우디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이 2018년 10월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된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 배후로 빈살만 왕세자를 지목한 이후 유가 상승과 중국 부상 등 경제·외교 측면에서 타격을 입자 빈살만 왕세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백기를 들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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