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 폐암 유발 가능성 확인…‘인간 폐세포’로 과학적 연관성 입증
전문가들, 폐암 ‘피해 질환’으로 정부의 인정 필요성 지적
정부가 인정하는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로 인한 피해 질환의 범위는 매우 느리게 확대되어왔다. 초기부터 피해 질환으로 인정됐던 폐섬유와 달리 천식과 태아 피해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처음 드러난 2011년으로부터 6년이 지난 2017년에야 피해 질환에 포함됐다. 일부 호흡기계 질환을 제외한 피부 및 심혈관계 질환, 폐암 등 다수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질환 중 상당수가 아직도 정부로부터 피해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고려대 안산병원, 국립환경과학원 등 연구진이 지난해 3월 국제학술지 ‘바이오메드 센트럴 약리학과 독성학(BMC Pharmacology and Toxicology)’에 발표한 논문은 인간 폐세포에서 발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폐암 피해자들을 구제할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논문의 제목은 ‘장기간, 저농도로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을 인간 폐 상피세포에 노출시켰을 때의 폐암 관련 유전자 변화 분석’이다.
앞서 고려대 안산병원, 서울대병원 연구진은 2021년 9월 국제학술지인 플로스원(PLOS ONE)에 실험용 쥐 대상 동물실험에서 폐암 발병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2019년에는 경희대와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진이 동물실험에서 폐암 발병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처럼 동물실험에서 발암 여부가 확인됐지만 사람에게서는 아직 제한적 자료만 있는 물질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는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2A군’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IARC는 발암물질의 동물실험 증거, 인체 증거 등에 따라 발암물질을 1군, 2A군, 2B군, 3군 등으로 나눈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폐뿐 아니라 다른 장기에서의 발암 여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제시됐다.
폐암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는 동안 200명이 넘는 폐암 피해자, 유족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막대한 병원비로 인한 고통까지 겪고 있다. 온 가족이 가습기살균제를 1997년부터 장기간 사용한 김성열씨 가족의 경우 2001년 장인 김모씨가, 2011년 부인 김모씨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부인 김씨는 2017년 피해 접수를 했음에도 아직 피해 단계 판정을 받지 못했고, 장인 김씨의 경우 시일이 오래 지나다보니 근거 자료를 찾기 어려워 피해 접수조차 하지 못했다. 2022년 폐암 판정을 받은 모은주씨는 폐암이 피해 질환이 아닌 탓에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폐암 발병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만큼 정부가 신속하게 폐암을 피해 질환으로 인정하고, 이미 폐암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피해자 가운데 폐암을 겪거나 폐암으로 사망한 이들의 규모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고, 피해자들의 생애주기에 맞춘 모니터링을 실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가 과학적 증거가 충분함에도 피해 질환 추가를 미룬다면 가해 기업 편을 드느라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29일 피해자들과 함께 폐암의 피해 질환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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