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공작’ 주도자를 강사로…자유총연맹, 총선 개입 촉각
이종명 전 MB 국정원 차장 위촉
보수단체 ‘연결 역할’ 인물 다수
활동 재개에 ‘정치적 의도’ 의심
관변단체 한국자유총연맹이 이명박 정부 시절 보수단체를 지원하며 댓글 공작을 벌인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사진)을 전속 강사로 위촉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이 전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특별사면으로 복권시킨 인물이다. 자유총연맹의 이 전 차장 강사 위촉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정원과 보수단체 간의 부적절한 커넥션과 관련된 인물·단체들이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이 전 차장은 지난 21일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자유총연맹 제1회 자유와 안보 지킴이 전국 순회 토크쇼’에서 자유민주주의 소양교육 전문 교수로 소개됐다. 자유민주주의 소양교육 전문 교수란 자유총연맹이 청소년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교육을 위해 위촉한 전속 강사다.
이 전 차장은 국정원과 보수단체들의 부적절한 커넥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경향신문이 이날 입수한 2017~2018년 ‘국정원 불법사찰’ 관련 공판기록·증거기록·진술조서 등을 종합하면 검찰은 공소장에서 “원세훈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한 2009년 2월12일부터 2013년 3월21일까지 국정원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수행을 보좌하는 기관이라는 인식과 기조를 바탕으로 운영했다”며 “3차장 이종명 등이 참석한 회의 등을 통해 주요 국정 현안에 관해 정부 입장을 옹호했다”고 밝혔다.
증거기록에 따르면 한 국정원 관계자는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조직인) 방어팀에 지시가 내려오거나 윗선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3차장을 거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며 “특히 이종명 3차장의 경우 방어팀에서 관리하는 우파단체에 관심이 많았고 적극 활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방어팀은 정부 입장을 대변해 시위를 해줄 보수단체를 지원하는 등의 역할을 맡았다.
원 전 원장은 정례적으로 ‘국가정체성 확립 관련 유관부서 회의’를 열고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인물·단체를 비방하는 여론을 조성하거나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등에 자금 등을 지원하는 활동 계획을 보고받았다.
2017년 국정원 수사의뢰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9년 청와대(정무수석실 시민사회비서관) 요청으로 ‘좌파 대항마로서 보수단체 역할 강화’를 위해 국정원 차원의 보수단체 육성 방안을 강구했다. 이에 국정원은 각 기업·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정보담당관(IO)을 통해 기업들이 보수단체들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이른바 ‘매칭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자유총연맹은 국정원으로부터 ‘S급’ 단체로 분류돼 2009년 마사회에서 1억원, 삼성과 전경련에서 매년 1억~3억5000만원씩을 지원받았다.
이 전 차장은 국정원 댓글 공작 관여 혐의로 2018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댓글 공작을 벌이며 국고를 손실한 혐의로 2021년 징역 2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법사찰하며 수억원의 국고를 사용한 혐의로 지난해 1월 징역 6개월이 선고됐다.
윤 대통령은 이 전 차장 등 사건 관련자들을 대부분 사면했다. 이 전 차장은 신년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됐고, 원 전 원장은 신년 특별사면에서 잔형을 감형받은 데 이어 지난 14일 광복절 사면으로 가석방됐다. 민병환 전 국정원 2차장과 유성옥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도 신년 사면으로 복권됐다. 2013년 국정원 정치·선거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범행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윤 대통령이 그들을 풀어준 것이다.
과거 국정원과 보수단체들 간 커넥션의 고리에 있던 인물들도 최근 본격 활동에 나서고 있다. 매칭사업의 물꼬를 텄던 현진권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시민사회비서관은 현재 강원연구원장을 맡아 ‘건국대통령 이승만, 제대로 알자’를 주제로 포럼을 여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백선엽 ‘친일 행적 지우기’에도 힘 실어
청와대 선정 지원단체였던 ‘뉴라이트 전국연합’ 기획실장 출신인 한오섭 전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을 맡고 있다.
국정원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신원검증센터를 지난 1월 신설해 인물 세평, 정당 및 사회단체 관련 사항 등 신원을 조사할 수 있게 됐다. 신설한 경제안보국 산하에는 50명 규모의 ‘경제협력단’을 설치해 경제 현안 정보도 수집한다. 재계는 기업 정보를 수집하던 옛 IO 제도의 부활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경련은 국정농단 사태 연루 후 탈퇴했던 삼성·SK·현대차·LG 4대 그룹이 6년8개월 만에 복귀하면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새 출발 한다.
자유총연맹은 지난 3월 정관에서 정치적 중립을 삭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자유총연맹 등 3대 관변단체 보조금은 26억4753만원 늘어났다.
이 전 차장은 강연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 중인 백선엽 장군 ‘친일 행적 지우기’에도 힘을 실었다. 이 전 차장은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1943년도에 부임했다. 동북항일연군은 1940년도에 궤멸됐다”고 주장했다. 백 장군이 1993년 출간한 책에서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고 한 사실조차 부정한 것이다.
함께 강연을 한 박인국 자유총연맹 대전지부 회장은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지킴이를 확고히 함으로 인해서 이 나라가 유지돼 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정말로 지도자 복은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자유총연맹은 전국을 돌며 이 같은 강연을 이어간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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