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법이 동성혼 법제화? 왜곡·정치적 해석”

이홍근 기자 2023. 8. 27. 20: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부부·비혼 동거 커플 등 ‘생활동반자’들 생각은…
한동훈 “사회적 합의 없다”
SNS에 공식 반대 입장 올려
“동성혼 법제화는 다른 법률
논거로 든 것 자체가 차별적”
이성애 관계인 커플들도
“다양한 관계 인정이 취지
법이 가져다줄 실익 봐야”

지난 1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생활동반자법의 실질은 동성혼 제도 법제화”라며 “충분한 논의와 그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저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바 없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주디스 버틀러 미국 UC버클리대 석좌교수는 그 전날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생활동반자법은 시기상조’라고 한 한 장관의 지난 6월 국회 발언에 대해 “한국 정부는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한 장관이 반박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27일 이 법안이 ‘생활동반자 관계’로 규정하는 이들을 만났다. 남남, 여여 등 소수자 부부부터 남녀 비혼 동거 연인, 결혼을 준비 중인 남녀 동거 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동반자들은 “혈연이나 혼인으로 묶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입법이 어려운 것은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한 장관과 같은 정치권의 차별적 시선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레즈비언 부부 중 처음으로 아이를 임신해 출산을 앞둔 김규진(31)·김세연(34)씨 부부는 “모든 이가 결혼을 원하지는 않는다”면서 “그들도 공동체 혹은 가족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이들에게 필요한 건 동성혼을 인정하는 혼인평등법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공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생활동반자법은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세연씨는 법의 공백을 자주 느낀다. 그는 “수술 같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가족이나 보호자가 필요하다”면서 “노인 환자의 경우 배우자와 이혼·사별을 했거나 자식들과 연을 맺고 있지 않아 난감한 경우가 꽤 많다”고 말했다.

생활동반자법안이 통과되면 동반자는 배우자에 준하는 권리를 갖게 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성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일상생활과 가사 등을 공유하며 서로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관계’로 규정한다. 이 관계에 있는 이들은 동거 및 부양·협조의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친양자 입양 및 공동입양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다. 사회보험, 공공부조,출산휴가 등 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생활동반자법=동성혼 법제화’라는 한 장관 주장은 법 취지를 왜곡한다는 게 김규진씨 생각이다. 그는 “생활동반자법과 동성혼 법제화는 다른 법률로 입법이 시도되고 있을뿐더러, 생활동반자법의 의의가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가족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어떻게 두 법이 같다고 할 수 있냐”고 했다.

동성커플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며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소성욱(32)·김용민(33)씨도 한 장관의 발언을 비판했다. 생활동반자법 반대 논거로 동성혼 법제화를 든 것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소씨는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고 하는데, 올해 갤럽 조사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하는 비율이 40%를 넘겼다”면서 “사회적 합의·인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치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석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 장관이) 생활동반자법을 동성혼 법제화로 가는 길 정도로 보는 것 같은데, 둘은 다른 법안”이라고 했다.

이성애 관계에 있는 이들도 생활동반자법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직장인 커플인 최민석(36)·윤나래(34)씨는 3년째 비혼 동거 중이다. 이들은 ‘연애의 끝에 결혼과 헤어짐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아 비혼 동거를 시작했다. 윤씨는 “주변을 보면 애정관계에 있더라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기 싫어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들도 가족관계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 비혼 동거를 특이하게 보는 시선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2년6개월째 동거 중인 프리랜서 진모(29)·최모(30)씨 커플도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씨는 “당장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데 결혼 도장을 찍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게 가장 치명적”이라며 “동성혼 찬반 문제로 끌어들여 논쟁할 게 아니라 법이 가져다줄 수 있는 실익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동차 보험료만 해도 배우자가 아니면 비싸진다”면서 “성소수자만 혜택을 받는 것처럼 논의가 흘러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한 장관은 법무부를 통해 “경향(신문)은 지난 번에는 ‘익명의 누리꾼’ 의견을 앞세우더니 이번에는 ‘소수의 익명 시민 인터뷰’를 근거로 ‘경향의 입장’을 담은 기사를 내려는 것 같은데, 법무부와 장관의 입장은 두번에 걸친 입장문과 같다”면서 “그 법률안은 동성혼 법제화 이슈를 포함하고 있고, 국민 모두에 큰 영향을 주는 내용이므로, 다수당 힘으로 어물쩍 통과시킬 게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익명 인터뷰’가 아니라 ‘실명 인터뷰’라는 경향신문의 추가 설명에도 법무부는 “한 장관의 입장은 변함 없다”면서 “길지 않은 내용이니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기사에 전부 반영해 주시기를 강력 요청드린다”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