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오늘의 달력
어제의 꿈을 오늘도 꾸었다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절망의 바닥을 보았다
바닥 밑에 희망이 우글우글 숨어 있을 거라고 거짓말했다
한장을 넘겨보아도 똑같은 달의 연속이었다
못 하는 게 없는 것보다 어쨌거나 버티는 게 중요했다
바닥 밑에 바닥, 바닥 밑에 바닥이 있을 뿐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바닥에 미세한 금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았다
바닥의 목소리가 뛰어올라 공중에서 사라질 때까지
당신의 박수 소리가 하늘 끝에서 별처럼 빛날 때까지
오늘도 달력을 넘기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당신의 애인에게서 내일의 꿈을 들었다
유현아(1970~)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은 느른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이 지속될 때, 시간은 더디 흐른다. 하늘보다 바닥에 더 자주 시선이 머문다. 바닥은 희망보다 절망이 깃든 공간이다. 위로할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더 서글프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버티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절망의 바닥”에서 소용돌이치는 “미세한 금들”은 희망이다. 깨뜨릴 수 없을 것 같던 견고한 바닥에 조금씩 틈이 생긴다.
반복해 “달력을 넘기는” 행위가 삶에 균열을 낸다. 달력 절반이 넘어가는 순간 남은 날보다 보낸 날이 많아지고, 결국 다 넘어간다. 달력을 넘길 때 생기는 미묘한 감정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변화가 찾아온다. 그날이 그날 같지만, 실상은 같은 날이 아니었던 것.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적응하고 성장한다. 삶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일 뿐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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