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a dream’ 연설 60년... 멀기만 한 킹 목사의 꿈
링컨 기념관 광장에 수천 명 운집
흑인 인권 문제, 이민·총기·성평등 문제로
“정의가 없다면,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 26일(현지 시각) 오전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광장에 모인 군중 수천 명이 잇따라 구호를 외쳤다. 이곳은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1929~1968)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외치며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한 장소다. 당시 킹 목사가 시민 25만명과 함께한 ‘워싱턴 대행진’(정식 명칭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은 이후 흑인 인권을 향상한 미국의 민권법(1964년), 투표권법(1965년) 등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워싱턴 대행진’ 60주년을 맞은 이날 링컨 기념관에서 2차 세계대전 기념관에 이르는 광장은 인파로 가득 찼다. 섭씨 34도로 치솟은 고온에도 링컨 기념관 광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대다수는 흑인이었지만 백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킹 목사의 모습을 새긴 티셔츠를 입은 유대인 참가자 마이크 캐플런씨는 “킹 목사가 앞세운 차별 금지, 평등의 가치는 미국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60년 전 킹 목사의 연설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킹 목사가 연설한 해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미국의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100년이 되는 때였다. 당시 ‘워싱턴 대행진’을 위해 광장에 모인 인파는 약 25만명에 달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노예해방 후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차별이 극심하다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당시 ‘젊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제안했지만 의회의 반대에 막혀 있던 민권법 제정을 촉구했다. 행사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힘입어 인종·피부색·종교·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민권법이 이듬해 제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킹 목사는 당시 연설에서 ‘후손들이 피부색으로 평가받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하지만 60년 후 링컨 기념관 앞 무대에 선 킹 목사의 손녀 욜란다 르네 킹(15)은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빈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한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에선 흑인과 다른 인종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아 정치·사회적 갈등이 번지는 상황이다. 제도적 차별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현실적 차별이 여전하다는 평가가 많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흑인 가구의 중위 소득은 미국 전체의 약 68%(2021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백인과 비교하면 65%, 아시아계 대비는 48%에 불과하다. 낮은 대학 진학률이 대를 이은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취지로 케네디가 도입한 대입 등에서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은 보수파가 장악한 미 대법원에서 지난달 폐기됐다.
인종차별 문제는 최근 미국에서 인권 문제라기보다 성 소수자, 총기 규제 등과 비슷한 정치 이슈로 굳어지고 있다. 이날 행사장 곳곳에도 ‘우리는 노동조합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민은 죄가 아니다’ ‘성 소수자를 존중하라’ ‘이젠 총기를 규제할 때’ 등 정치적 구호를 적은 팻말들이 인종차별 철폐 구호와 뒤섞여 있었다. 한 참석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이날 다른 도시에서 벌어진 비극적 총격 사건은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여전히 미국 사회를 덮고 있음을 드러냈다. 워싱턴 대행진 60주년 행사 당일 플로리다주(州) 잭슨빌에선 흑인을 겨냥한 인종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 이날 오후 2시쯤 흑인 위주 대학인 에드워드워터스대 인근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흑인 남성 2명과 흑인 여성 1명이 사망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20대 초반 백인 남성으로 알려진 범인이 방탄 조끼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AR-15 스타일 소총 1정과 권총 1정을 갖고 가게에 들어가 총격을 시작했고, 3명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잭슨빌 보안관 T.K. 워터스는 기자회견에서 “총격은 인종적 동기로 일어났다. 용의자는 흑인을 혐오했다”고 밝혔다. 범행을 진압한 후 경찰이 공개한 사진 속 소총 자루엔 흰색 물감으로 독일 나치를 상징하는 문양(스와스티카)이 그려져 있었다. 미 언론들은 “이날 총격으로 인근 대학가에는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다”며 “끊이지 않는 증오 범죄에 학생들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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