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다시 광야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대학가에서는 노래패들이 활약하면서 민중가요를 양산했다. 동아리 성격의 노래패들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다양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서울대의 ‘메아리’, 연세대의 ‘울림터’, 고려대의 ‘노래얼’, 성균관대의 ‘소리사랑’ 등이 대표적이다.
그 흐름 속에서 문승현과 대현 형제는 큰 역할을 했다. ‘메아리’ 출신의 형 승현은 ‘그날이 오면’ ‘오월의 노래’ ‘사계’ 등을 만들었다. 또 1980년대 연합 노래모임 ‘새벽’을 주도했고, 노래운동의 중심이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초창기 리더 역할을 했다. ‘소리사랑’ 출신인 동생 대현은 ‘광야에서’를 만들었다. 1984년, 스물두 살 때였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 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안치환과 김광석, 윤도현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이 노래는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라는 후렴구에 이르면 저절로 피가 끓는 노래다. 1980년대 이후 독재 타도와 호헌철폐, 인권 개선과 통일을 염원하는 자리마다 이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문대현은 김광석이 부르고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꽃’의 작사·작곡가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서 아이유의 달콤한 목소리가 더 어울리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부쩍 다시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에 내몰린 느낌이다. 통일은 멀어지고, 인권은 짓밟히고, 생명보다는 돈이 대접받는다. ‘법대로’를 외치는 위정자들은 법을 방패 삼아 제 살길 찾기에 바쁘다. 시대가 힘없는 백성들에게 각자도생을 요구한다. 울분이 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광야에서’를 목놓아 부르고 싶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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