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찌르고 우리가 피 흘리다 [세상읽기]

한겨레 2023. 8. 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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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건물 입구에 고인을 추모하는 스티커와 조화가 놓여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세상읽기] 최영준 I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권위주의 시대에는 공공부문과 시민 사이에 일종의 위계가 있었다.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교사들은 교사대로 권력을 행사했고, 시민들은 때로 뇌물이나 촌지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실현시키곤 했다. 민주주의가 본격화되며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 국가의 의무가 되었다. 동시에 시민은 소비자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민주사회의 소비자들은 ‘민원’이라는 창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지 못한 이들이 민원을 통해 무언가를 더 얻어내지 못하면 부족한 소비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연대의식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갑질’이나 ‘진상’으로 표현되곤 한다. 드라마에서 보는 ‘당신 윗사람 나오라고 해’ 혹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등은 실제 현실이다. 민간뿐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발견된다. 일선에서 일하는 이들은 소비자의 정체성을 가진 일부 시민들에 의해서 계속 멍이 들고, 위로부터는 ‘고객’을 제대로 응대하라는 요구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교사와 공무원의 자살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들 모두가 우리다. 우리는 이들이 태어났을 때 함께 기뻐해주었을 수 있고, 함께 학교에 다녔을 수도 있다. 이들은 지하철에서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을 수 있고, 우리 아이의 고충을 경청해주었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 아이들은 미래에 그 자리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내가 그고, 그가 곧 나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원인 제공자를 찾아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선생님의 죽음이 학생 때문이라고 하면, 언젠가 있을 수 있는 학생의 죽음은 선생님 때문이라고 우리는 비난하게 될 것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더욱 냉가슴을 앓고 있을 장애 아동의 부모님 때문도 아니다. 매일 가슴을 졸이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이들 역시 우리다. 그럼에도 우리가 찌르고, 우리가 피 흘리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불안해지고, 또한 약해져 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각자도생을 부추기는 무한경쟁 자본주의 사회와, 연대적 공동체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김성아의 연구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는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없다고 응답한 사례의 비율이 약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가장 높았다. 50대 고독사가 늘고, 20대의 고립과 은둔이 심화하는 ‘외로운’ 사회이기도 하다. 자살률이 오이시디 국가에서 가장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이런 사회에서 부모들은 ‘나의’ 자녀들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 하고, 경제력을 물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성공이라 여겨지는 직업들인 선생님과 공무원도 안전하지 않다. 결국, 너무도 소수만이 그들만의 ‘성공’에 이르고, 남은 대다수는 다시 각자도생 사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이 사회는 그대로 두고 청년들에게 출산하라고 장려하는 우리는 정상인가.

이제 우리를 죽이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관료제와 소비자주의 사회를 넘어, 시민이 주도하면서 상호호혜적으로 서로의 역할을 공감하고 돌보는 공동생산 사회로 가야 한다. 세금은 우리를 소비자가 아닌 ‘공공’을 만드는 공동생산자로 만들어야 한다. 왜 ‘그들이’가 아니라 ‘우리가’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행복한 선생님 없이 행복한 학생이 있을 수 없듯이, 존엄한 시민 없이 존엄한 국가가 가능하지 않고, 안정된 노동자 없이 안정된 고용주가 있을 수 없다. 상대방을 누르고 희생시켜서 나의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상대방이 잘되고 행복해야 한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의 규범과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리더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가 보는 당신들의 모습은 이렇다.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피 흘리고 복종할 때까지 찌른다. 사과하는 것을 약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또 그것을 이용하여 넘어뜨리려 한다. 함께 숙의하는 모습보다는 비난하고 조롱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고 있다. 당신들의 모습이 우리가 되고, 우리 아이가 되어간다.

우리가 자해하며 소멸해가는 지금을 변화시키는 힘은 우리에게 있고, 당신들에게 있다. 모두가 존엄한 사회,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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