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찾아라
[한겨레 프리즘]
[젠더 프리즘] 장수경 | 젠더팀장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라졌다.
서울시 관악구의 한 공원에서 3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고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19일 사망했다. 가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범행 장소로 정했다”며 “강간하고 싶었다”고 범행을 인정했다.
대낮, 공원에서, 출근길에 벌어진 ‘페미사이드’(여성 살해)였다. 하지만 김 장관은 피해자가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여성 폭력 방지 대책 주무부처 장관의 ‘실종’ 상태다. 그는 이번 ‘신림동 공원 여성 성폭력 살해’ 사건도 ‘페미사이드’가 아니라고 여겨서 입을 열지 않는 걸까. 김 장관은 지난해 7월 발생한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도 젠더 폭력이 아닌 “안전 문제”라고 말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라졌다.
25일 오전 국회에서는 ‘김 장관을 찾아라’ 추격전이 벌어졌다. 이날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로 한 김 장관이 국회 경내에 있으면서도 전체회의에 나타나지 않아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가위 위원들은 그를 찾으려 국무위원 대기실까지 찾아갔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위원들이 김 장관이 있는 곳을 묻자,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은 화장실로 피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전체회의에 나타나는 대신 여가부발로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 알림’을 보냈다. “여가위 불참 통보를 한 적이 없으며 참고인 합의가 되지 않아 여당 출석이 확정되지 않았고 이에 국회에서 출석 대기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날 여가위 전체회의에서는 부실 운영 논란 속에 종료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와 신림동 여성 폭력 사건 등에 대한 현안질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김 장관의 ‘실종’으로 여가위 전체회의가 파행됨에 따라, 위원들은 여성 폭력에 대해 여가부가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물을 기회를 잃었다. 논란이 일자, 여가부는 26일 보도자료를 내 “김 장관은 상임위 일정에 대한 여야 간 합의가 이루어지는 즉시 회의에 출석하겠다”고 해명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라졌다.
정부는 23일 ‘흉악범죄 대책’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 자리엔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이 참석했다. 여가부 장관은 없었다. 정부가 흉악범죄를 젠더 폭력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 모습이었다. 이날 흉악범죄 대책으론 흉기 소지 의심자 등 검문검색, 경찰 순찰 강화, 시시티브이·보안등 등 설치, 의무경찰제 재도입, 가석방 허용 않는 무기형 도입, 고위험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 도입 등 물리력을 동원한 대책들이 포함됐다. 젠더 폭력 대책은 없었다.
이날 나온 대책은 흉악범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대검찰청의 ‘2022 범죄 분석’ 자료를 보자. 2021년 발생한 흉악범죄 사건 3만2242건 중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은 2만8228건(87.6%)으로, 남성이 피해자인 사건(4014건)의 7배가 넘는다. 사실상 흉악범죄를 ‘여성 폭력 범죄’라고 봐도 무방한 게 현실인데, 정부는 애써 ‘여성’을 지우고 ‘폭력’으로 단순화한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벌어진 당시에도 정부는 이를 ‘페미사이드’로 보지 않고, 여성·남성 화장실 분리, 비상벨 설치 같은 근시안적인 대책만 내놓았다. 7년이 지난 현실은, 아시다시피 이렇다.
김 장관의 ‘사회적 실종’ 중에도 여성의 일상은 위협받고 있다. 23일 전주에선 한 남성이 산책 중인 여성을 끌고 가 성폭행하려 했다. 25일엔 강릉에서 60대 남성이 지인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강남역 사건이 발생한 당시도 신림동 사건이 발생한 지금도, 여성의 외침은 같다. “성평등 해야 안전하다.” 장관 취임 뒤 1년여 동안 ‘여성 폭력’에 침묵해온 김 장관이 이번엔 입을 열길 바란다면, 헛된 기대일까.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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