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크라잉넛,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서다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뉴욕!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 다양한 인종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여사는 곳. 마천루 사이로 스파이더맨이 날아다닐 것 같고, 카페 구석에서는 레옹이 조용히 우유를 마시고 있을 것 같고, 센트럴파크에서는 해리가 샐리를 만나고 있을 것만 같은, 가보진 않았을지라도 영화 같은 추억이 있는 도시.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쏟아지는 타임스스퀘어에서 관광객들은 저마다 추억을 사진에 담고, 날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화려한 뮤지컬이 펼쳐지는 곳. 낭만의 대명사 뉴욕에서 크라잉넛이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뉴욕의 한복판, 세종문화회관 같은 ‘링컨센터’ 야외무대에서 말이다.
링컨센터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뉴욕 시립 발레단, 뉴욕 줄리아드 음대 등이 있는데, 이런 유서 깊은 곳에서 크라잉넛이 공연하게 되다니 꿈만 같은 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뉴욕에서는 일주일 동안 영화, 무용, 케이팝, 디지털 아트 전시 등 한국의 문화가 펼쳐지는 ‘코리안 아츠 위크(Korean Arts Week)’가 열렸다. 그 중 ‘케이-인디 나이트’ 프로그램에 크라잉넛이 참가하게 된 것이다. 뉴욕에서 한국 문화의 관심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일주일 동안 모든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고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14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도착하자마자 링컨센터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하고 멤버들과 뉴욕을 거닐었다. 시차 때문에 몽롱하게 타임스스퀘어를 거닐며 맨해튼 거리를 만끽했다. 개성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뉴요커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까칠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피어난 들꽃처럼 생기를 뿜어댔다. 고층 빌딩들이 깔보고 있는 듯한 거칠고 도도한 뉴욕에서 공연해야 한다니, 기분 좋은 흥분감이 몰려왔다. 본능적으로 무대 위에서 절대로 뉴욕의 기세에 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정말 미국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새벽 6시인데, 많은 사람이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요가를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었다. 진짜 뉴욕에 왔구나 싶었다.
리허설을 위해 링컨센터 댐로쉬 파크 무대에 올라섰다. 손짓 발짓을 해가며 리허설을 마치고 드디어 공연시간. 먼저 ‘세이수미’가 멋지게 무대를 장식해 주었다. 뉴욕의 하늘이 붉게 물들어오고 사람들도 계속 몰려왔다. 그리고 곧 크라잉넛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비행기에서 수십번도 넘게 입으로 중얼거렸던 영어멘트를 해 보았다.
“잇츠 그레이트 아너 투 비 히어 인 링컨센터 투나잇 위드 유(It’s great honor to be here in Lincoln Center tonight with you., 오늘 밤 링컨센터에서 여러분과 함께 공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리숙한 영어 발음이었지만 진심이 통했는지 사람들은 많은 환호를 보내주었다. “유어 스마트폰 플래쉬라이트 레프트 라이트 쉐킷 쉐킷. 오케이?” 이런 장난기 섞인 콩글리시 멘트에도 많이들 웃고 스마트폰 불빛을 흔들며 호응해 주었다.
객석에는 한인들도 많았지만 절반 정도는 현지인들이었다. 정말 한국문화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고, 한국어로 된 우리 노래가 뉴욕에서 울려퍼지고 다같이 노래 부르다니 뭉클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28년 동안 크라잉넛이 해왔던 수많은 공연의 정수가 뉴욕 밤하늘을 별처럼 수놓은 느낌이었다. 93년도 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아파트 옥상에 모여 밤새 기타를 치고 깔깔거리며 꿈들을 얘기하고 지새웠던 밤들. 언젠간 세계 무대에서 우리만의 로큰롤을 펼쳐보자고 말했던 이야기와 소음에 가까웠던 연주들이 밤하늘로 피어올라 별이 된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라! 별들이 그렇게 고울 리 없다. 춥고 산소도 없는 우주 밤하늘에서 아주 뜨겁게 매일 반짝거리려면 로큰롤같이 거칠고 시끄러운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앵콜곡 ‘밤이 깊었네’를 연주하며 뉴욕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를 바라봤던 별들이 다시 한 번 찾아와서 우리를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배우 이선균 형과 영화 ‘킬링 로맨스’의 이원석 감독님이 응원차 링컨센터 공연을 보러 와주었다. 코리안 아츠 위크에서 영화상영과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 뉴욕에 왔다고 했다. 여러모로 한국 문화가 사랑을 받고있는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에 돌아오려던 날, 이선균 형과 뉴욕의 낭만을 즐기다가 그만 비행기를 취소해 버렸다.
여러모로 뉴욕은 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오염수 안전하다”는 정부…‘수산물 규제’ 한-일 분쟁, 자가당착 빠져
- [단독] 국방부 ‘홍범도 동상’ 있는데도 “육사에서 철거” 운운
- 대통령실 구내식당에 우럭·장어·전복·…오염수 불안에 소비 촉진
- 신생아 머릿속 절반 피투성이…쌍둥이 중 첫째를 잃은 뒤
- “일식 또 먹나 봐라”…중국 ‘오염수 방류’ 일본 보이콧 움직임
- 벽지 벗기니 일제강점기 책…오래된 한옥이 모두의 외갓집으로
- 200조 부채 한전 사장에 정치인? ‘윤석열 캠프’ 김동철 유력
-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GS건설에 영업정지 10개월 추진
- [단독] 36억원 들인 잼버리 물놀이장…예상의 25%만 이용
- 프리고진처럼 죽었던 린뱌오…푸틴의 미래 드리운 ‘환멸’